[인터뷰] "미친 짓 많이 했죠"… 최민이 배우가 되기까지

2014-03-26 11:18

배우 최민 [사진=남궁진웅 기자]

아주경제 이예지 기자 = '앗! 이 배우!' 싶은 배우가 있다.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배우, 한 장면 등장에도 온 힘을 쏟는 배우, 관객과 시청자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하는 배우를 두고 우리는 신 스틸러라고 부른다.

데뷔한 지 20년쯤 됐다. 각종 광고나 화보에서 두각을 나타내더니 브라운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영화 '해안선'에서 장동건의 선임 병사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스크린에서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배우, 한 장면에 출연한다고 해도 내 안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는 배우 최민을 만났다.

최민은 "할 이야기가 많다"며 자신의 수첩을 꺼내 들었다. 준비한 태블릿PC에는 그가 출연했던 광고라든지 영화, 드라마 속 장면이 담겨있었다. 데뷔 초 찍었다는 프로필 사진을 건네며 '이땐 이정도였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내공까지 갖춘 최민.

"그때 당시 프로필 사진이예요. 유명한 사진작가를 찾아갔어요. 돈도 없으면서 무슨 깡으로 찾아갔는지 모르겠어요. 저에게는 은인이죠. 그 형이 기가 찼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근데 저를 보면서 본인의 사회 초년생 시절이 떠올라서 도와줬대요. 그렇게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들고 강남에 있는 모든 광고 에이전시를 다 돌아다녔어요. 미친 짓 많이 했죠. 하하. 걷다가 백화점 앞에서 쓰러진 적도 있었어요. 마음은 걷고 있는데 몸이 안되는 거예요. 그만큼 절실했던 것 같아요."

최민이 배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한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무언가에 이끌려 막연히 배우를 꿈꿨던 소년이었다고 했다. 시골에서 남몰래 키워온 '꿈' 때문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고, 구두 굽이 닳도록 강남 바닥을 걸어 다닐 수 있었던 패기와 열정을 갖춘 최민이 배우가 되기까지 여정을 들여다 봤다.

# 꿈 많던 소년의 멘탈붕괴.

춤 추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소년 최민은 혼자서 연기 연습을 하는 취미를 가졌었다. 군 제대 후 대학을 진학하면 배우라는 꿈을 인정해주겠다던 아버지. IMF가 닥쳤을 때 그 믿음도 무너졌다. 최민은 그렇게 홀로 거제도로 향했다.

"원래는 독일에서 연기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IMF가 터지면서 캐나다에 있던 동생까지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됐죠. 저의 미국행이 좌절된 거예요. 처음으로 하고 싶은걸 못하는 좌절을 경험했어요. 완전히 멘탈붕괴였죠."

심리 안정을 찾을 세가 없었던 최민은 무작정 거제도로 떠났다. 약 1년간 스쿠버다이빙 강사를 하면서 바닷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또 1년은 산 속에서 수양했다. 그렇게 최민은 어엿한 어른이 됐다.

"그 2년 동안 사람이 됐어요. 그전에는 아버지를 원망했었거든요. 유학도 못 가고 연기도 못 하게 되는 상황을 받아드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산속에서 지내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죠. 그때 철이 들었던 것 같아요."
 

배우 최민 [사진=남궁진웅 기자]

# 서울에서 맛본 연기의 참맛.

무작정 서울행을 택한 최민이 처음 한 일은 엑스트라 출연이었다. 약 3만 5천 원의 출연료를 받고 몇 장면에 출연했던 최민. 그가 엑스트라 출연을 선택한 것도 오로지 연기 공부를 위해서였다. 현장에서 부딪히며 '동선'이라든가 '용어'를 습득하기 위해서였다.

"현장이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그냥 부딪혀보자는 생각으로 단역 출연을 시작했죠. 학교에서 배운 연기가 전부였으니까 동선이나 카메라 워킹 이런 걸 알 턱이 없었어요. 하하. 지금 생각하면 그런 패기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그러다가 독일의 연기 수업 방식과 똑같은 커리큘럼을 시행하고 있는 한 극단을 발견했다. 1년이 넘는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친구도, 가족도, 애인도 없는 사람처럼 오로지 연기에만 몰두했다.

"그곳에서 연기의 참맛을 봤어요. 흔히 뽕 맞는다고 하죠. 그 맛을 본 배우들은 절대 연기를 못 그만둔다더라고요. 제가 그런 케이스예요. 연습하면서 느꼈고, 무대 위에서 또 느꼈죠. 그때 '아, 이거구나' 싶었어요."

# 인생을 바꾼 영화와 CF.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오디션을 봤다. 100% 합격을 자신 했던 작품에서도 인지도에서 밀렸다. 마지막 희망으로 봤던 '해안선' 측에서도 불합격 통보를 받은 최민.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억울하고 분한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전화했죠. 뭐라도 좋으니까 아무 역할이라도 달라고요. 그래서 배역 이름도 없는 대원 10 역할을 맡았어요. 대본을 엄청 분석했죠. 그런 저의 모습을 예쁘게 봐주셨나봐요. 헌병대장 역할이 필요할 때 저를 시켜주시더라고요. 결국엔 대원과 헌병대장 역할을 제가 다 연기했던 거예요. 하하."

'해안선'을 계기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이어 '천국의 에스컬러이터'에 출연했다. 그러던 중 인생 최고의 기회가 찾아왔다. 발품 팔고 돌렸던 프로필을 유심히 본 한 광고 에이전시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그전까지는 감독 미팅을 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미팅을 하자는 거예요. 얼굴을 보고 싶다고요. 만났는데 두 장의 사진을 내미셨죠. 감독님은 다른 사람인 줄 알고 실물 미팅을 제안한 건데, 하필 그 두 사진 다 저였어요. 하하. 그렇게 호주로 날아갔어요. 그때 찍었던 광고가 엄청 유명해지면서 저의 인생도 바뀌었죠."

'맨땅에 헤딩'했던 '소년' 최민은 이제 어엿한 '진짜' 배우가 됐다. 마음 맞는 소속사도 찾았고, 인생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는 친구와 믿고 따라와주는 후배도 생겼다. 최근에는 그동안 못 다했던 연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는 최민은 작품이나 캐릭터를 따지지 않는단다. 어떤 역할이라도 온 힘을 쏟아 부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의 더 큰 도약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