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아버지의 이름으로' 반세기 만에 독일 방문

2014-03-25 15:39
드레스덴 공대에서 '통일 미래' 담은 독트린 발표
선친과 얼싸안고 통곡한 파독 광부·간호사들과 시대를 뛰어넘는 재회


아주경제 주진 기자 ="동서 베를린의 장벽을 따라 자동차를 달리며 건너쪽 어두운 또 하나의 세계를 바라다보며 우리나라 휴전선과 판문점을 연상했다. 철조망 건너 멀리 바라다보이는 동독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휴전선 북방에 살고 있는 우리 북한동포를 생각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50년 전인 1964년 12월 7∼14일 당시 칼 하인리히 뤼브케 대통령의 초청 방독을 마치고 쓴 장문의 '방독 소감'의 한 구절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64년 12월 6일 분단국가였던 서독 방문길에 올랐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밖에 안 되는 빈국의 대통령으로 비행기가 없어 독일 정부가 보내준 루프트한자 649호기에 올라 7개 도시를 경유하며 장장 28시간의 비행 끝에 베를린에 도착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경제재건의 모델인 '라인강의 기적'을 직접 둘러보고, 독일을 동서로 갈라놓은 베를린 장벽의 철조망을 바라보면서 통일의 의지를 다졌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에르하르트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 담보가 필요 없는 1억 5900만 마르크(약 3500만 달러)의 차관을 얻는 데 성공했다. 각각 1만여 명, 8000명에 이르게 된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임금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이 차관과 이들이 국내로 송금한 외화는 추후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건설 등 경제 개발에 투자돼 한강의 기적을 달성하는 토대가 됐다.

이제 교역규모 세계 8위, 1인당 GDP 2만 4000달러에 이르는 부국의 대통령이 된 그의 딸이 반세기 만에 다시 독일을 찾아 ‘통일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 드레스덴 통일독트린 주목= 25일부터 독일을 방문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일정은 부친의 염원을 계승하려는 듯 이른바 '통일 행보'로 가득차 있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지난 21일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의) 독일 방문은 통일과 통합을 이뤄낸 독일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것"이라며 방독 목적이 우리의 통일 대비에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우선 통독의 상징적 장소로 꼽히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시찰에 이어 통독 주역 6명 접견, 드레스덴 공대연설 등 통일 관련 행보가 두드러진다.

특히 박 대통령이 구동독지역인 드레스덴 공대연설(28일)에서 새로운 대북 제안과 통일을 위한 국제협력 요청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통일 대비 구상을 담은 '드레스덴 통일 독트린'을 내놓을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사흘 밤낮으로 계속된 연합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잿더미가 된 이 역사적인 도시는 통독 전만해도 경제적으로 쇠락한 변두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0년 통일과 동시에 독일 연방정부 및 주정부의 경제구조개선사업(GWR)에 힘입어 AMD, 인피니온, 프라운호퍼 연구소, 지멘스, 폭스바겐 등 세계 유수기업과 시설을 잇따라 유치하며 지금은 독일을 대표하는 첨단과학도시로 탈바꿈했다.

드레스덴은 통일에 수반되는 준비과정 즉, '경제ㆍ사회적 기반 조성'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 벤치마킹하기에 최적의 성공 모델을 갖춘 셈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3월 베를린에서 포괄적 대북 지원 원칙을 내놨다. 2000년 3월 '햇볕정책'의 토대가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3개월 뒤 1차 남북 정상회담의 결실로 이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11년 5월 베를린에서 북한의 핵 폐기를 전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안보정상회의 초청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드레스덴 연설에서는 보다 구체성을 띤 대북 제안이 나올 것으로 점쳐진다. 가령 제2 개성공단 조성사업 등 대규모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 교류의 질적ㆍ양적 확대를 꾀하는 제안이 나올 것이란 예상도 있다.

◇ 시대를 뛰어넘은 파독 광부·간호사 만남 = 1964년 12월 10일 박 전 대통령은 루르 지방에 위치한 독일 함보른 탄광으로 향했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눈물의 연설을 했던 그곳이다. 인근 탄광에서 일하는 300여명의 파독 광부들과 루르 지방도시 뒤스부르크와 에센의 간호학교에서 일하는 파독 간호사 50여명이 모두 한복차림으로 박 전 대통령 내외를 기다렸다.

현지 광부들로 구성된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하자 현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준비된 원고를 내던지고 "국가가 부족하고 내가 부족해 여러분이 이 먼 타지까지 나와 고생이 많습니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우리 생전에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에게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라며 격정적인 연설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선창으로 시작된 애국가 합창은 후렴구에 이르러 어느새 흐느낌과 통곡으로 변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사고로 목숨을 잃은 광부에게 조의를 표하고 자리를 떴다. 광부들에게 국산 '파고다' 담배 500갑을 나눠주고 나서다.

그뒤로 50년 뒤 박 대통령은 28일 옛 동독지역인 독일 남동부 작센주의 드레스덴에서 이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난다.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제2의 경제도약을 다짐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