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크림반도 귀속과 '우연속의 필연'

2014-03-23 13:14
미국 견제 동시, 댜오위다오 남사군도 넘어 대만 외몽고 포석

지난달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사진/중신사)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3월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국민보호를 이유로 크림반도에 군대를 파견한 지 3일만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표명했다. 이를 들은 시진핑 주석은 푸틴 대통령에게 "우연 가운데 필연이 있다"고 답했다. 알듯 모를 듯한 추상적인 답변이지만 ‘정치고수’인 푸틴대통령은 시 주석의 대답에 미소를 띄었을 것이다. 이어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의 정세는 매우 복잡하고 매우 민감해 지역의 정세와 국제적인 정세 전체가 연동돼 움직이고 있다"면서 "러시아 측이 각 당사자들과의 협조를 통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끌어감으로써 지역과 세계평화 안정을 수호할 것으로 믿는다"고 당부했다. 
▲3월7일.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이 현재 논의 중인 러시아 제재방안을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중국은 국제관계에서 걸핏하면 제재를 가하는 것에 일관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재로써 위협을 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제재에 대해 명확한 반대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3월11일. 크림 의회와 크림에 위치한 특별시인 세바스토폴은 독립 선언서를 채택했고 독립에 대한 주민투표 일정을 확정해 공고했다.
▲3월15일. 유엔이 미국의 요청으로 안전보장이사회 15개 이사국 전체회의를 열어 '크림 주민투표 무효' 결의안을 표결에 부치자 중국은 15개국 중 유일하게 기권표를 던졌다. 결의안은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채택되지 못했고, 미국은 중국의 기권으로 압도적인 국제여론을 조성해 내는데 실패했다. 중국 정부의 기권사유는 "중국은 대립적 방안을 찬성하지 않는다”였다.
▲3월16일. 주민투표에서 크림 주민 96.8%가 독립과 러시아 귀속을 찬성했다. 투표가 종료된 후 압도적인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크림 주민들은 광장에 나와 러시아기를 흔들며 환호했고 어떤 주민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제여론과는 정반대로 압도적인 지지속에 크림공화국의 러시아병합작업이 축제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3월18일. 푸틴 대통령은 크림공화국을 러시아 영토에 편입시키는 합병조약에 서명했다. 이날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가진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푸틴대통령은 “크림자치공화국 문제에 있어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해준 중국에 감사한다”며 공개적으로 사의를 표했다.
▲3월19일.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크림 문제에는 역사적인 경위와 현실적으로 복잡한 사정이 있기에 처리할 땐 전면적으로 비교 판단하고 고려가 필요하다"며 관계 당사국에 대해 "긴장을 고조하는 걸 피하고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단 한마디의 비판성명도 내지 않았다.

숨가쁘게 진행된 일련의 과정을 보면 중국은 크림반도의 러시아귀속을 두고 사실상 러시아를 적극 지지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3일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전화통화 내용이 공개되자,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개입을 노골화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지만, 이후 과정에서 양국은 찰떡궁합을 과시했고, 러시아는 서방의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사천리로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다만 국제법상 논란이 있고,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차원에서 중국은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을 뿐이다. 

중국내 국제관계전문가는 "지난 3일 양국정상의 통화내용이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며 "시 주석은 당시 러시아가 평화적인 방법으로 크림반도를 병합해 낸다면 이를 지지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실제 러시아는 총알 한발 쏘지 않고 압도적인 지지 속에 크림반도를 병합해 냈다. 국제적인 비난여론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태도다. 중국의 사실상 러시아 지지 입장은 러사아의 크림반도 병합이 중국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이 깔려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거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도 중국은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지속적으로 '관련 당사국들의 냉정과 자제'를 촉구해, '가해자'인 북한에게 시간을 벌어줬고 역내 영향력을 높였다. 반면 댜오위다오(釣魚島)나 남사군도 분쟁때는 즉각적인 강경발언을 내놓아 주변국을 압박해온 중국이다. 이번 크림반도 문제를 놓고서도 중국은 자국이익을 위해 러시아를 물밑지원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이 중국에 어떤 이익을 가져올까. 

러시아귀속을 자축하고 있는 크림반도 주민들(사진/연합)


◆미국견제와 러시아 동맹강화

크림반도는 흑해의 제해권을 쥐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크림을 지배함으로써 러시아는 서방의 팽창을 저지하고 중앙아시아, 중동, 지중해 연안으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다. 크림을 빼앗긴 서방으로서는 손실이 크다. 소련연방 해체 이후 진행됐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전략에 제동이 걸렸으며, 더 나아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추가적인 국력투입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독일, 영국 등 유럽의 지도자들이 러시아를 격렬히 비난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때문에 이는 중국에게 미래 패권 경쟁자인 미국을 견제하는 이익을 가져다준다. 

이와 함께 러시아라는 든든한 우방과의 결속을 강화하는 이익도 가져왔다.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 몇년새 최고의 밀월기를 구가하고 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초 정상취임 뒤 첫 해외 방문국으로 상대국을 선택했었다. 중국정부 집계에 따르면 시 주석이 지난해 3월 러시아를 첫 방문한 이래 중러 정상은 지난해에만 모두 4차례 정상회담을 했고, 전화통화는 세 차례, 서신연락은 16차례나 했다. 양국 지도자는 지난달 소치올림픽에서도 회동했으며, 5월에는 푸틴대통령의 방중이 예정돼 있다. 

미국과 서방을 매개로 한 양국의 공조는 앞으로도 더욱 긴밀해질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에서의 중국의 미국견제를 러시아가 지원하고, 중앙아시아와 유럽, 중동지역에서의 러시아의 미국견제를 중국이 지원하는 식으로 양국은 공통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셈이다. 양국의 경제적인 협력 역시 강화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만 외몽고 염두 장기포석

이번 크림반도 주민투표가 중국의 신장(新疆)자치구나 티베트의 독립으로 이어질지를 염려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국내에서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부 학자들은 시진핑 주석이 푸틴에게 했던 '우연속에 필연이 있다'는 말을 곱씹어봐야 한다는 주문을 한다. 우선 중국은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경험한 적이 있다. 1945년 외몽고에서는 청나라시대처럼 중국에 병합될지, 아니면 독립국으로 남을지에 대한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97.8%의 몽고주민이 독립을 지지했고, 중국은 이를 깨끗하게 받아들였었다. '주민투표에 의한 독립'은 전례가 있는 만큼 그 자체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만약 신장이나 티베트에서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가 벌어진다면 그 결과는 예측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이미 수많은 한족들이 이주해 있는 상태며, 해당지역은 경제적으로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위구르족과 티베트족 중 한족에 동화된 주민도 많다. 또한 이들 사이에서 중국으로부터 독립해서 얻을 실익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부정리도 이뤄지지 않았다. 경제가 붕괴되 국민들의 생활고가 극심한 우크라이나나 크림과는 상황이 아예 다르다는 것.

게다가 중국은 크림반도사태를 분리독립이 아닌 귀속으로 보고 있다. 우연한 계기가 우크라이나사태를 만들어냈지만 크림반도 귀속이라는 결과는 필연적이라는 게 중국의 판단이다. 과거 러시아의 영토였던 크림반도가 돌고돌아 다시 러시아로 돌아갔다는 게 시진핑 주석이 말한 '우연속의 필연'이라는 해석인 것. 이 표현은 현재 분쟁중인 댜오위다오와 남사군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대만과 외몽고에까지 적용된다. 중국은 눈부신 경제발전과 강대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세계 1류국가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크림이 독립국가의 길을 버리고 강대국인 러시아에 스스로 귀속됐듯, 역사적으로 자국영토였던 외몽고나 대만이 훗날 중국에 귀속될 가능성까지도 고려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몽고나 대만의 귀속은 머나먼 이야기이겠지만 중국은 시 주석의 표현처럼 '필연을 가지고 올 우연'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