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인재혁신과 채용-발문] 그들이 우려한 것은 ‘삼성’이 아닌 ‘한국 사회’였다

2014-02-17 06:00
구직자, “‘총장 추천제’ 좌절, 또 하나의 기회 잃었다” 개탄
삼성의 오만보다 대학과 사회의 부조리가 더 큰 원인


아주경제 채명석ㆍ이재영ㆍ이혜림ㆍ박현준 기자 = “더 큰 문제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우리 사회다. 한국에 만연해 있는 불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지난달 28일 삼성그룹이 새로 도입하려던 신입사원 채용제도의 도입의 전면 유보를 선언한데 대해 젊은이들이 내린 진단이다.

삼성그룹의 발표 직후 본지는 삼성과 대학 관계자들 보다, 채용제도를 직접 접해야 하는 대학 졸업 예정자와 졸업생 등 ‘취업 준비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이에 현재 취업을 준비중인 젊은이들에게 △삼성을 비롯한 기업의 기존 인재채용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삼성이 시도한 총장추천제 방식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 하는지 △자유시장 경제 체제에서 여론에 밀려 기업이 스스로 원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지 라는 세 가지 단서를 제시하고, 원고지에 직접 서술해 달라고 요청했다.

예상보다 많은 35명의 취업준비생들이 답변을 보내왔다. 한자 한자 정성껏 적은 이들의 글 속에는 취업이라는 고개를 넘어서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우선 총장추천제를 골자로 한 삼성의 새로운 채용방식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이 예상보다 많았다는 점이 놀라웠다.

하지만 반대의 이유에 눈길이 갔다. 젊은이들은 대학의 서열화, 지방대생과 여대생 차별 등을 거론했다. 그런데 이들이 삼성의 새로운 채용방식에 반대하는 진정한 이유는 삼성 때문이 아닌, 바로 자신들이 속한 대학과 한국사회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바로 총장으로 대표되는 대학이 무슨 기준으로 추천권을 행사하겠냐는 것이었다. 여기엔 반드시 ‘비리’와 ‘파문’이 연계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총장추천제의 부작용은 대학 총장의 막대한 권한에 있다. 취업 준비생 자식을 둔 부모라면 어떻게 해서든 아는 지인을 총동원해 총장에게서 추천서를 받고자 할 것이다. 그 만큼 ‘삼성이 갖고 있는 네임 밸류가 크기 때문이다. 총장의 지인이 아닌 부모를 둔 취업 준비생들도 불리하고 설령 총장의 지인이라 해도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인이란 이유로 추천을 못 받을 수도 있으니 불리하다”는 한 답변자의 견해에 대학과 사회에 대한 불신감 등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또 다른 답변자는 “삼성의 통보를 받은 대학들은 인원 수를 (자기 학교의) 선전 도구로 활용했다”며 대학 측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추천장 할당량을 받은 대학이나 그렇지 못한 대학이나 일제히 이를 공개한 것은 학생을 위한다는 구실보다는 대학 스스로가 서열을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대학들의 무책임한 행동은 각 소속 대학 졸업을 앞둔, 또는 졸업한 취업 준비생들이 자신들과의 뜻과 관계 없이 커다란 상처로 되돌아왔다.

이들은 다양한 채용제도를 통해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삼성의 총장추천제의 좌절은 “또 하나의 기회를 타인에 의해 날려버렸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삼성을 통해 한국사회에 만연된 ‘불신’과 ‘비정상’을 바로 잡고 싶어한 이들은 ‘삼성’을 ‘한국’과 동일한 잣대에 놓고 바라봤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국민을 태운 대형선박과 같다. 훌륭한 선장이라면 소통을 통해 합의를 이룰 것이며, 판단과 근거를 선원들이 이해하도록 설득할 것이다”라는 답변자의 주장은 삼성 뿐만 아니라 정부 관계자들도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