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윤재선 SIAFF 위원장 "소외된 이들 아우르는 건축의 다양성 보여줄 것"

2014-02-04 18:47

윤재선 서울국제건축영화제(SIAFF) 집행위원장. [사진=남궁진웅 기자]


아주경제 노경조 기자 = "요즘은 건축도 유행을 따라가기 바쁩니다. 패션화되고 있죠. 저는 소외된 이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건축의 다양성과 진정성을 영화제를 통해 보여주려 합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에는 윤재선 서울국제건축영화제(SIAFF) 집행위원장이 경영하는 팀일오삼건축사무소가 있다. 윤 위원장이 소유한 건물 지하에 터를 잡은 건축사무소는 여느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처럼 설계 도면과 모형 등이 가득했다.

지난달 말 건축사무소에서 만난 윤 위원장은 설계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해 영화제 준비로 본업에 소홀했다는 그는 "그래도 직원들 월급은 밀리지 않고 있다"며 인터뷰 시작부터 재치있는 입담을 뽐냈다.

그는 또 "건축에는 고유의 묵직함이 배어 있어야 한다"며 시류에 편승한 건축에 대한 안타까움도 내비쳤다. 다양성의 부재를 해소하는 것은 곧 윤 위원장이 SIAFF를 통해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 "영화제도 기초가 중요"

윤재선 위원장이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사실 그리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는 "2011년 영화제 집행위원으로 합류했는데, 당시에는 갈등 중재 및 관계 조절을 위한 소위 술 상무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5회 SIAFF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된 뒤에는 영화제에 대한 학습 기간이 필요했다고 윤 위원장은 고백했다. 흐름을 이해하기까지 꼬박 6개월이 걸렸다.

윤 위원장은 우선 월간지 스페이스 공간 2년치를 빠짐없이 읽었다. 건축이 일반인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건축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다른 영화제와의 차별성을 위해 발품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환경영화제를 시작으로 부산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독립영화제 등에 참석해 관계자들을 만나고 영화 제작부터 배급까지의 과정을 배웠다"며 "이 기간은 '지적 호기심'이라는 건축영화제 만의 개성을 찾을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앞서 개최된 1~4회는 사실상 영화제로서의 틀도, 고유의 색깔이 미비했다. 그래서 주제 선정부터 브로슈어 디자인까지 처음부터 손수 구성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윤 위원장은 상영관을 선정하고 투자를 유치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SIAFF는 국토교통부 등의 후원을 받아 매년 1억원 이하의 소규모 예산으로 운영된다.

그는 "회를 거듭할수록 SIAFF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영작들이 상업성이 없어 적정 수준의 영화관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며 "예술극장 전용관인 이대 아트하우스 모모 등이 호의를 베풀어 무사히 영화제를 치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집행위원장으로서 윤 위원장의 데뷰 무대인 제5회 SIAFF는 지난해 좌석점유율 70%를 초과 달성하며 성황리에 폐막했다.

◆ 공존의 미학을 배우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성균관대학교 수원캠퍼스를 방문한다. 겸임교수직을 맡아 올해로 7년째 건축학도들을 가르치고 있다.

윤 위원장은 아무리 바빠도 당분간 겸임교수로서의 삶을 고수할 생각이다. 대학생들과 소통하면서 젊음을 느끼고, 인생 선배로서 도움을 주는 일에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 교육은 모든 산업의 구조를 이루는 뿌리와도 같다"며 "물고기 잡는 법, 즉 건축을 통한 방법론을 배우면 앞으로 사회에서 어떤 구조의 변화를 겪어도 잘 적응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영화제 주제였던 '집(House)'도 학생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을 보며 모든 행위는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며 "인종 또는 계층에 따라 선택의 여지없이 건축·건물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삶을 사회 전반으로 끄집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건축사사무소 대표로서의 경영관이 '행복'이라는 윤 위원장의 성격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성균관대 산학협력프로그램 '코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실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그는 공존의 미학을 언급하며 더 많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울러 "집은 의식주를 구성하는 기초 단위이자 지극히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곳"이라며 "부동산의 관점에서 보면 투기의 대상이기도 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올해 영화제 테마는 아직 미정이다. 그는 "이달 건축사협회로부터 예산을 배정받으면 집행위원단을 꾸리는 등 슬슬 준비할 예정"이라며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주제로 찾아뵙겠다"고 강조했다.

◆ "SIAFF,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윤 위원장의 구성력과 추진력은 학창시절부터 발휘돼 왔다.

그는 연세대 설계 동아리 '형(形)'의 공동 창시자다. 올해 27주년을 맞는 이 동아리는 걸출한 건축가들을 배출해 냈다. 이용주 영화 '건축학개론' 감독,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 지난해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신혜원 로칼디자인 대표 등이 이 동아리 출신이다.

미국에서 석사를 마친 후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힐리어 설계사무소에서 일할 당시에는 능력을 인정받아 입사 3개월 만에 1만달러의 임금 인상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후 6개월 만에 5000달러가 추가 인상됐다.

윤 위원장은 "하고 싶은 일에 도덕적인 결함이 없으면 망설임없이 실행에 옮기는 편"이라며 "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감사하게도 순간마다 힘을 보태준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올해 집행위원장에 연임된 그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보다 완벽한 건축영화제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SIAFF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건축 분야 최고 권위의 영화제로 성장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윤 위원장은 "관계자들이 SIAFF에 대해 여성영화제 초창기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평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올해로 16회를 맞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특수성을 갖는 영화제 중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그는 올해부터 영화제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성별과 연령 등을 분석하고 데이터화할 계획이다. 또 건축영화제 만의 독특함을 나타낼 수 있는 부속물을 구상 중이다. 40~50대 중·장년층 여성들이 많이 찾는 SIAFF가 더 많은 사람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윤 위원장은 "아시아에서 논해지는 모든 건축·도시 담론이 서울에서 이뤄지고, 유럽 등 건축 선진국과의 교류에 앞장서는 SIAFF가 되는 날까지 정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윤재선 위원장 프로필

◇ 학력
△ 연세대학교 건축공학 학사·건축공학대학원 석사
△ 펜실베니아대학교 건축디자인학 석사

◇ 경력
△ 2006.11~ 팀일오삼건축사사무소 대표
△ 2008.03~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
△ 2013.05~ 대한건축사협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위원장
△ 2002.02~2006.10 더부종합건축사무소 공동대표
△ 2001.07~2002.02 ORG건축사사모수 대표
△ 1999.09~2001.04 힐리어 설계사무소 (필라델피아, 미국)
△ 1997.07~1998.02 한건건축사사무소 소장·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