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처 자금 증시유입 71조…검은머리 외국인 아냐?

2014-01-23 15:56


아주경제 양종곤 기자 = 지난해 조세회피처에서 국내 증시로 유입된 자금 규모가 7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거래소를 비롯해 증권가에서는 이 자금 규모 상당 부분이 외국인으로 가장하고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한국인을 일컫는 '검은머리 외국인'을 통해 흘러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조세회피처로 알려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아일랜드, 케이만아일랜드, 스위스 등 5곳 예금 계좌의 국내 상장사 주식 보유금액은 지난 2011년 말 53조3700억원에서 작년 말 70조5770억원으로 17조원 가량 늘었다. 이는 작년 말 전체 외국인 보유금액 430조5985억원의 16%에 해당하는 비중이다.

조세회피처는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소득 과세를 면제하거나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국가다.

한국거래소의 '글로벌 한국증권시장 20년' 자료를 보면, 국내 증시에서 검은머리 외국인이 회자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다.

당시 외국인에 대한 시장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외국인의 영향력을 악용해 부당이익을 얻으려는 세력이 늘게 됐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들은 주로 일부 중소형 종목 및 테마주의 지분을 단기간에 늘렸다가 차익을 남기고 빠져나가는 식으로 국내 투자자들을 이용한다"고 전했다.

조세회피처가 검은머리 외국인의 활동 무대로 꼽히는 이유는 이들의 투자방식 때문이다. 

검은머리 외국인이 선호하는 투자방식은 조세회피처 투자를 비롯해 역외 헤지펀드 투자, 금융정보 교환협정 미비국가를 통한 우회투자 등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조세회피처를 이용하는 방식을 보면, 주로 상장사 대주주들이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지분을 취득하기 위해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한다. 그 뒤 금융감독원에서 외국인 증명서를 발급받고 국내 주식에 투자한다.

검은머리 외국인은 영향력을 악용해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게 우려를 낳는다. 

검은머리 외국인이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주식을 사면, 마치 외국계 자금이 유입된 것처럼 보인다. 개인투자자들이 추종 매수에 나서면 물량을 대거 팔아치워 개인에게 손실을 입히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일부 선량하지 못한 검은머리 외국인의 단기간에 걸친 투기적, 탈법적 매매로 인해 발생하는 신뢰 훼손과 불필요한 변동성 확대는 증시에 고질적인 문제"라고 전했다.

최근 대기업의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 설립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증권사가 기업들의 조세회피를 도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작년 6월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민주당 이상직 의원은 "대기업들의 조세회피처를 통한 조세회피보다 심각한 것은 증권사 재벌일 수 있다"며 "금융 전문 기업 오너들이 대기업 재벌들, 조세회피처와 동조하고 검은머리 외국인을 고용해서 주식시장을 교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재벌들은 자기 회사 자금을 사용하지만 금융 재벌들은 고객과 기관 자금을 통해 조세회피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