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칸의 여왕 전도연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 ‘집으로 가는 길’
2013-12-07 09:00
*이 기사에는 결말 등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4일 서울 CGV 왕십리에서는 영화 ‘집으로 가는 길’(감독 방은진·제작 CJ엔터테인먼트 다세포클럽)가 언론배급시사회를 열고 첫 관객을 맞이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지난 2004년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마약범으로 오인된 주부 J씨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KBS2 ‘추적60분’에서 다루어지기도 했다.
송정연(전도연)은 남편 김종배(고수)와 카센터를 운영하며 하나 뿐인 딸 혜린(강지우)과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종배가 보증을 서준 친구 수재(허준석)가 자살을 하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가족은 카센터를 처분하고 작은 단칸방으로 거처를 옮긴다. 방이 좁아 딸의 장난감을 버려야할 정도다.
종배와 정연이 보증을 잘못선 사실을 알게 된 친한 동생 서문도(최민철)는 부부에게 남미 가이아나에서 프랑스로 원석을 옮기는 일을 제안한다. 옮기기만 하면 수백만원의 돈을 만지게 해준다는 솔깃한 제안에 종배는 흔들린다.
수상한 느낌이 든 정연은 종배를 만류한다. 한 달, 두 달 방세가 밀리면서 집주인의 구박이 심해지자 종배는 “하겠다”고 했지만 “여자가 아니면 안된다”는 말에 되려 화를 낸다.
종배를 말렸던 정연은 딸이 갖고 싶어하는 인형 하나 못 사주는 현실이 너무나도 야속한 나머지 남편 몰래 문도에게 전화를 걸어 일을 수락한다.
“잠시 어디 다녀올테니 찾지 말아줘”라는 메모만 남기고 프랑스로 떠난 정연은 오를리 공항에서 붙잡힌다. 원석인줄로만 알았던 가방의 내용물은 마약.
현행범으로 붙잡힌 정연은 국외 추방을 당하지도 못하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주불대사관에서 찾아오지만 행정관(배성우)은 달랑 세면도구 몇 개만 두고 사인만 받아 떠나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재판을 받아야하지만, 주불대사관의 외면으로 통역도 없는 상황에 처한 정연이 재판을 받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은 악화돼 재판을 받지 못해 수감 4개월만에 대서양의 외딴 섬 마르티니크 감옥으로 이송된다.
정연은 주불대사관에 통역을 요청하는 편지를 여러 차례 썼지만 응답 없는 대사관이 야속하기만 하다.
한국에 있는 종배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검찰을 찾아가보지만 오히려 ‘마약쟁이’인지 검사를 받는다. “서문도를 잡아오면 금방 해결된다”는 검찰의 말에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서문도에게 피해를 본 조직폭력배들과도 인연을 맺은 종배는 두목(이도경)으로부터 “미국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리는데 그 이유는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는 말에 포기하지 않고 더욱 힘을 낸다.
노력 끝에 서문도는 잡히고 다행히 “송정연은 마약인 줄 몰랐다”라는 유리한 증언을 법정에서 한다. 이 같은 내용은 주불대사관에게 통보됐지만 서류발송을 누락하는 실수 때문에 정연의 재판은 무기한 연기된다.
그 와중에 동성애자인 여성교도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했던 정연은 천신만고 끝에 도망친 곳이 카리브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혼 10년차가 되는 날 남편과 함께 여행을 오기로 했던 곳이 바로 카리브해.
집에서 쫓겨난 종배는 딸 혜린을 친구 광식(이동휘)이가 운영하는 PC방에 맡겨두고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다. “아이 엄마가 재판도 없이 프랑스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제발 제 아내를 돌려 보내주세요”라는 피켓을 든 한 아이의 아빠이자 남편의 간절함이 가득 묻어 있다.
광식은 단골 손님인 중학생들을 이용해 일련의 사건들을 요약해 주한 프랑스 대사관 홈페이지, 주불대사관 민원란 등에 게재한다. 네티즌들의 여론에 주불대사관 측은 정연을 찾아 가지만 “프랑스라 느리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100유로를 던져두고 떠나버린다.
외교통상부까지 찾아간 종배는 매몰차게 뿌리치는 공무원들에게 화가나 “살아있는지만 확인해달라는 게 그렇게 어렵느냐”라며 몸에 휘발유를 뿌리지만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한다.
언론에 노출된 정연의 사연을 들은 한 방송사 PD는 종배에게 취재를 제안하며 “저희 프랑스로 갈건데 같이 가셔야죠”라고 말한다.
방송사의 취재로 주불대사관의 실수는 확인된다. 마르티니크에서 3년 넘게 유학 중인 한국 학생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 와중에 주불대사관 측은 정연에게 “방송사에서 취재하면 뭐 달라질 것 같으냐. 이럴수록 일이 더 꼬일 수 있다는 걸 모르겠느냐”고 으름장을 놓는다. 방송사에는 ‘방송을 하지 말 것’을 공문으로 요청한다.
그러나 정연의 안타까운 사연은 전파를 타고 십시일반 부부를 돕기 위한 모금도 진행된다.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풀려 정연은 재판을 받는다.
2년만에 법정에 선 정연은 최후발언으로 “저는 죄인입니다. 돈에 욕심을 내 무지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어떻게 해야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 기도했습니다. 제가 용서를 빌어야할 사람들이 더 있습니다. 바로 2년전 네 살이었던 제 딸과 남편입니다. 이제 제 딸은 6살이 됐습니다. 제 딸과 남편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저는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전도연의 연기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재판부는 1년형을 선고한다. 즉, 2년 넘게 수감됐던 정연은 이미 형량을 채운 상황. 정연은 딸에게 선물해주려던 인형을 손에 들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2년간 떨어져 있던 혜린은 엄마를 보고도 어색해하고, 미안한 마음에 정연은 눈물을 흘린다.
다시 모인 가족은 옥탑방으로 이사를 하고 하얀 첫 눈이 내리던 날, 2년간 웃음을 잃었던 세 가족은 기념 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웃는다.
허옇게 일어난 입술과 씻지 못해 뻗친 머리의 고수는 다비드 같은 조각미남에서 종배로 완벽 변신했다.
SBS ‘수상한 가정부’에서 호연을 보인 바 있는 아역 강지우의 눈물 연기는 ‘내일’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리얼리티를 위해 기용된 현지 배우들과 실제 교도소 수감자 및 교도관들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룬 게 아니라 ‘있었던 이야기’를 담았기에 영화가 끝난 후 오는 여운은 진하다. 러닝타임 131분이 언제 지나갔는지 잊게 한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뒤 가족에게 전화라도 한 통 걸고 싶어지게 만든다. 15세 이상 관람가로 1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