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마케팅 눌렀다
2013-11-24 18:10
패션업계 외부 영입 인사들, 디자이너형이 마케팅형보다 성과 좋아
아주경제 강규혁 기자 =패션업계 외부 영입 인사들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대형 패션업체들의 외부 영입 인사들은 크게 디자인형과 마케팅형으로 나뉜다.
소위 패션 대기업에 합류하기 전부터 독립 브랜드를 보유했거나 쇼를 진행했던 스타급 디자이너들이 전자라면, 해당 브랜드의 덩치를 키우고 마케팅 전략을 진두지휘하는 디렉터들은 후자라 볼 수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이들 영입파 중 업계에서 보다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쪽은 디자인형이다. 이들은 꾸준한 퍼포먼스와 실적으로 회사 내 영향력까지 증대되고 있다,
디자인형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최근 제일모직을 퇴사를 결정한 정구호 전 제일모직 전무다.
정 전 전무는 독립 디자이너의 대기업행이 전무하다 했던 지난 2003년 제일모직에 입사하며, 본인의 브랜드 '구호'를 해외시장에 널리 알린 데 이어 '르베이지'ㆍ'데레쿠니' 등 히트작을 양산했다.
특히 '대기업의 시스템 속에서는 디자이너의 독창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라는 세간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는 데 일조했다.
정 전 전무의 성공은 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제일모직은 2011년 '준지' 컬렉션으로 이미 해외에서 디자인 파워를 인정받은 정욱준 디자이너(상무)를 영입하며 정 전전무와 투톱체제를 구축해 업계 1위를 굳게 고수하고 있다.
최근 정 전 전무의 퇴사와 제일모직 패션사업부의 이관이 맞물리면서 정욱준 상무의 거취에 대해서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지만, 회사 측은 정 상무가 회사에 남을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코오롱Fnc는 최근 몇년 간 쿠론의 석정혜 디자이너, 쟈뎅드슈에뜨의 김재현 디자이너, 슈콤마보니의 이보현 디자이너를 각각 이사로 영입했다.
쿠론은 지난해에만 250%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며 올해 600억원 대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글로벌 브랜드인 피에르가르뎅과의 디자인 관련 법정분쟁에서도 성공하며 이름을 알렸다. 슈콤마보니와 쟈뎅 드 슈에뜨도 꾸준히 인기를 끌며 코오롱Fnc의 히트아이템으로 거듭나는 상황이다.
휠라는 내년 초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토미 힐피거의 동생인 지니 힐피거 라인을 선보일 예정이다. 휠라는 올 초 지니 힐피거를 수석디자이너 격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영입한 바 있다.
휠라 관계자는 "지니 힐피거는 현재 휠라 USA 소속으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휠라 브랜드 전반의 디자인과 마케팅 전략 수립에 관여하고 있다. 내년 초 선보일 신제품은 그녀가 2000년 대 초반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카고바지와 같이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마케팅형 인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제일모직 부사장 출신의 전문 경영인인 박창근 성주디앤디 사장은 지난 11일자로 사임했다.
박 사장은 글로벌 전문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MCM에 영입된 후 경영 전권을 양도 받아 중국ㆍ유럽 등 해외 비즈니스를 이끌어 왔지만, 영입 후 채 1년도 채우지 못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는 실패했다.
금강제화는 지난해 LG패션 출신의 남기흥 전무를 의류사업본부장으로 영입하며 아웃도어 브랜드 '헬리한센'의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현재 헬리한센은 직영점을 중심으로 영업은 계속하고 있지만 브랜드 및 영업망 확대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 남 전무는 퇴사했다.
이와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마다 특성이 다르다보니 영입인사의 유형이나 선호도도 나뉘게 마련이다. 현재는 디자인형이 가시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향후에는 어떻게 될 지 예상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