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만에 백기든 정부…현오석 경제팀 ‘균열’
2013-08-13 18:30
세제개편 수정안 치명타…신뢰 회복 어려워<br/>정부 지출 조정 불가피…증세 논의 재점화
아주경제 배군득 기자=정부가 세제개편안을 발표한지 닷새 만에 수정안을 내놓았다. 정부의 중요한 정책 중 하나인 세제개편안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13일 소득세 과세구간을 연소득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은 세제개편안 수정안을 발표했다. 지난 8일 발표 후 닷새 만에 과표구간이 전면 재검토됐다.
이번 세제개편안 수정안이 발표되면서 현오석 경제팀에 대한 자질론도 도마 위에 올랐다. 중장기 조세정책까지 타격을 받은 만큼 이번 수정안은 박근혜 정부에 상당한 치명타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
특히 정책 수립과 조율 단계에서 정무적 판단이 미흡했다는 점은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작용할 공산이 커졌다.
◆ 현 부총리의 '현장철학' 실종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논란이 된 소득세 과표구간은 '중산층'의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부의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평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제개편안에 자신의 철학을 담는 데 실패했다.
들쭉날쭉한 정부의 중산층에 대한 규정은 세제개편안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 부총리는 '증세 없는 재원 확보'에 집착한 나머지 국민의 세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획재정부 입장에서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조세와 예산이 기재부의 한 해 농사라고 불릴 정도로 세제개편은 기재부에서 상당히 중요한 업무다. 특히 이번 세제개편안은 박근혜 정부의 첫 조세정책이라는 측면에서 향후 재원 확보의 방향을 제시하는 방향타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같은 세제개편안이 원점 재검토되면서 현오석 경제팀의 균열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세제개편안 발표 후 수정안이 이렇게 빨리 제시된 것은 정부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실수"라며 "이번 수정안으로 정부의 정책 추진과 신뢰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 프레임에 갇힌 정부…증세 논의 수면 위로
세법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증세에 대해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세율 인상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수립한 조세정책을 고집하다보니 그 프레임에 갇혀 시야가 좁아졌다는 얘기다.
이번 세제개편안 역시 '사실상의 증세'라는 여론의 반응에 기재부는 "증세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만큼 박근혜 정부에서 증세는 국정운영 전반을 새로 짜야 하는 단어인 셈이다.
그러나 세제개편안이 수정되면서 증세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소득세 시스템의 전환보다 증세가 바람직하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오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증세는 없다는 국정기조를 지키기 위해 원천징수 세율을 못올리고 있다"며 "근로소득자 공제한도를 축소하는 것보다 솔직한 증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부담 기준선이 올라가면 세수가 줄어 정부 지출도 일부 조정돼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됐다. 세수 감소를 비과세·감면 조정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구체적 대안도 나왔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세법개정으로 2조5000억원의 세수 순증을 예상했던 만큼 세부담 기준선 조정에 따른 세수 감소를 비과세·감면 조정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소득기준 변경으로 세수가 줄어들면 근로장려세제(EITC), 자녀장려세제(CTC) 혜택도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