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성장과 긴축의 기로에서

2013-07-08 14:30
박기홍 외환은행 경제연구팀 연구위원

박기홍 외환은행 경제연구팀 연구위원.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벤 버냉키가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사실 지난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전까지만 하더라도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칭을 가진 버냉키가 출구전략에 대한 일정을 구체화하리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성장론자에 가까운 버냉키가 긴축론자들이 요구하는 출구전략을 선제적으로 언급한 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버냉키로서는 재정긴축과 출구전략을 통해 경제 정상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야당인 공화당측의 공세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본격적인 출구전략에 앞서 미리 시그널을 줌으로써 시장의 내성을 키워 향후 출구전략 시 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의견도 있다.

경제위기 해법으로 제시되는 성장과 긴축의 날선 공방 속에서 버냉키의 속내는 무엇일까?

긴축론자들은 미국이 과도한 국가 부채로 소버린 리스크(국가채무위기)가 증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넘치는 유동성 문제로 자산시장의 버블이 확대되었으며, 주변국으로 인플레이션 위협을 전가시켜 근린 궁핍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당장 출구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경제주체들의 자유의지가 약화되어 좀비기업과 개인들이 양산되면서 궁극적으로 잠재성장률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성장론자들은 이와 상반된 논리를 가지고 긴축론자들을 반박한다.

그들은 세계경제의 침체가 지속되고 있어 여전히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신용수축기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한다. 신용수축기는 중앙은행의 유동성(양적완화를 포함한 본원통화)이 시중 통화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양적완화 축소 등 중앙은행의 유동성을 의도적으로 줄일 경우 최근처럼 시장의 변동성을 높이고, 실물경제를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오히려 경기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여 신용팽창기로 접어들 때까지 정부의 자원배분 역할과 현재의 통화완화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용팽창기에는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시행하더라도 중앙은행의 유동성 비중이 감소하여 시장과 경제에 주는 충격이 크게 완화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 금융사의 이코노미스트 역할을 하고 있지만, 두 경제학 거장들의 논리를 감히 반박하거나 편들 수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립되는 두 주장을 통해 적지 않은 통찰력은 얻을 수 있다.

우선 정부정책이 보다 정교하고 실효성 있게 구성될 필요가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시행된 대규모 재정 및 통화정책이 오히려 국가경제 체질을 비효율적으로 전락시켜 왔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들이 민간경제의 활력은 증진시키되, 적재적소에 이를 필요로 하는 경제주체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또 단기적으로 침체된 경제를 부양시키기 위해 통화량과 재정지출 규모를 확대할 수는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철저한 균형재정과 통화관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과도한 유동성과 정부부채 상태는 물가앙등 위협, 성장모멘텀의 둔화 등 국가경제의 체질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성장론과 긴축론의 논쟁은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과 같은 학설 대립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각 주장들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서로간의 보완점을 찾아본다면 최근 위기국면을 극복할 수 있는 혜안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성장론자인 버냉키가 긴축론자의 출구전략을 선제적으로 꺼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