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법’ 통과, 재계는 “여전히 안갯속”

2013-07-04 14:39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상당히 유리한 조건’에 적용되는 부당 내부거래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일감몰아주기 규제 관련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향후 논의될 추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놓고 재계는 여전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기업에 집중된 시장 지배력을 완화해 중견·중소기업들과 동반성장을 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룹 총수 위주의 대기업 지배구조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에 각 그룹들은 어느 수준 만큼 추가 ‘성의’를 보여야 할지 고민중이지만 모호한 기준 때문에 ‘윤곽’도 잡지 못한채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직접적인 움직임을 나타낸 기업은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LG그룹, 롯데그룹 등이다. 이들은 일단 핵심사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광고와 물류 등 부대사업의 일정 부문을 외부에 개방하는 등 정부 정책 기조에 발을 맞춰나가고 있다. 효성 등 일부 대기업들도 오너 일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사업에서 손을 떼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이러한 움직임이 오너가 갖고 있는 힘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친다고 여기고 있다. 이러한 시각이 대기업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 법률 일부개정안’(일감몰아주기 규제법)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것이다.
개정안에서는 부당 지원행위의 판단 요건을 ‘현저히 유리한 조건’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수정했다. ‘현저히’에서 ‘상당히’로의 바꾼 것은 재계가 부당 내부거래가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요건이 완화됐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하지만 재계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사전상의 의미로 ‘뚜렷이 드러날 정도’를 말하는 ‘현저히’와 ‘어지간히 많이, 또는 적지 않게’라는 뜻을 담은 ‘상당히’는 어느 쪽이 더 강한 표현이라고 비교하기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두 단어에 어느 쪽이 무겁고 가볍고를 비교하기에 앞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 지원행위에 대한 조사를 더욱 광범위하게 진행할 수 있는 길이 더 크게 열렸다는 점이 더 우려스러운 대목이다”며 “입증한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판단되면, 다시 말해 오너가 큰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모든게 규제 대상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특히 법안이 시행되는 첫 해인 내년부터 기업 집단에 속하는 1519개 계열사 모두 공정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올해보다 더한 기업 발목잡기가 진행될 수도 있다는 불안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대기업의 신규순환출자금지 법안도 재계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현행 상법은 상호주 취득을 금지해 한 회사(모회사)가 다른 회사(자회사)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다른 회사(자회사)는 그 회사(모회사)의 지분을 취득할 수 없으며, 다른 회사 지분의 10% 이상을 갖고 있는 경우 그 회사가 보유한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공정거래법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지정해 계열회사간 상호출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같은 강력한 규제가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아예 순환출자 자체를 규제하려는 것인데, 재계는 이 또한 오너의 그룹 지배력을 축소시키기 위한 또 다른 규제장치라고 보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순환출자는 기업이 경영환경에 대해 효율적으로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며 “이를 인위적으로 금지할 경우 기업은 다양한 구조조정 수단 중 효율적인 수단을 선택할 기회를 제약당하고, 적대적 M&A에 노출될 경우 적절한 방어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많은 국내 기업들이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 향후 시장에 매물로 나올 예정인데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할 경우 인수 가능한 기업 후보군이 줄어 M&A시장의 위축과 함께 외국기업에 팔려 국부 유출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금산분리 강화법안 개정안은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9%에서 4%로 낮춘 게 핵심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 우위에 있는 활황기에는 대기업의 금융업 진출을 막기 위해 유효한 법안이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금융업에 신규 진출할 산업자본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안 처리가 강행된 것은 향후 발생할지도 모를 상황을 가정해 무리하게 규제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성일 전경련 금융경제팀장은 “실제 우리나라 주요 은행 중 최대주주인 은행은 없는데, 이는 대기업들이 직접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은행 대출을 통해 사금고화 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며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등 주요국에서도 이러한 규제조항이 없고 국제적으로도 산업과 금융간 융합 트렌드가 일반화 돼 있다는 점에도 역행하는 처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