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의 금융지주 새 수장 '정통 뱅커 가뭄'
2013-06-09 19:35
KB·농협 '관료', 산은 '학자'…내부 소통 중요한 시점
아주경제 김부원 기자= 박근혜정부 출범 후 금융지주사 인사 개편이 진행 중인 가운데 비금융권 출신들이 금융지주사의 수장 자리를 꿰차고 있다. 금융지주사 네 곳 중 세 곳이 비전문가인 관료 및 학자 출신이 새 수장으로 낙점받은 것이다.
물론 출신 자체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통 뱅커'가 아닌 관료 출신들이 금융지주사를 이끌 경우 금융인의 시각보다는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경영에 더 많이 개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시장 반응도 싸늘하다. 정부 주도의 금융산업 구조조정 및 개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관료 출신과 정권 주변 인사의 진입으로 '신 관치'를 걱정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 임영록 KB금융 사장, 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는 임종룡 전 국무총리실 실장이 내정됐다. 두 내정자 모두 관료 출신이다.
임영록, 임종룡 내정자는 각각 행정고시 20기와 24기 출신이다. 임영록 내정자는 2010년 8월부터는 KB금융 사장으로 재직했기 때문에 금융회사 경영을 미리 경험했다. KB금융 내부 인사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사실 '정통 뱅커'는 아니다. 반면 임종룡 내정자는 '정통 관료' 출신이다.
유일하게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내정자가 정통 금융인 출신이다. 이 내정자는 1977년 상업은행에 입행해 2011년 우리은행장이 되기까지 줄곧 금융인으로 지냈다.
◆정치력보다는 소통이 절실
관료 출신이 금융당국과 소통을 잘 할 수 있다는 점에선 유리하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실적 개선을 이끌기 위해선 금융인의 마인드와 현장 경험이 더 없이 중요하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과 은행은 업무 성격이 크게 다른 데도 불구하고 증권이 아닌 은행 출신 인사가 증권사 사장으로 선입될 때도 있다"며 "이런 경우 증권사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기도 하고, 직원들과 소통에도 어려움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경영인에게는 해당 분야에 대한 경험과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지주사 회장 내정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일이라 생각한다"며 "금융당국 이상으로 직원들과의 소통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순우 행장이 우리금융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이유 중 하나도 민영화 추진 시 직원들의 의견을 가장 잘 조율할 수 있는 적임자로 꼽혔기 때문이다. 한편 임영록 내정자는 지난 7일 서울 명동 KB지주 본사로 출근했지만, 국민은행 노조원들의 자진사퇴 요구 집회로 인해 발길을 돌렸다.
◆모피아가 대세 이룬 금융권
단지 금융지주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모피아(재무부+마피아)'라 불리는 옛 재무부 출신 관료들이 일부 주요 금융기관의 수장으로 선임되면서 관치금융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임영록, 임종룡 내정자 외에 김근수 여신금융협회장,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 이원태 수협은행장 등이 재경부와 기재부 등을 거친 관료 출신들이다. 신용보증기금 역시 홍영만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이 유력한 차기 이사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치권도 관치금융 부활 조짐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금융권에서 민주화에 역행하는 관치경제가 부활하고 있다"며 "모피아 개입은 경제민주화 퇴행의 상징으로, 6월 국회에서 따지겠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선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임 사장의 KB금융 회장 내정과 관련, "관료의 회장 선임은 KB금융과 은행 산업 전반에 단기적으로 부정적인 뉴스"라며 "최근 주요 금융지주 회장에 관료 출신이 선임되면서 관치 확대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 연구원은 "(이는) 향후 정부 주도로 금융산업 구조조정과 구조개편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라며 "금융산업의 구조조정·개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장기적 평가는 성과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은행권 한 관계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권에서 관례적으로 행해지는 코드인사·낙하산 인사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