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의 Y방정식> 박근혜와 이건희·정몽구, 지금 생각해야 하는 교훈

2013-05-05 14:00

아주경제 이상준 산업·IT부 부국장=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민주화 정책 추진과정에서 정부의 태도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모양새를 반복하면서 재계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 며칠새 경제민주화 입법->투자활성화(규제완화)->투자압박 등이 이어지면서 정부와 재계의 엇박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방문 때 51명 규모의 사상 최대 경제사절단을 동반한다. 현재 재계 얼굴 마담인 호암 이병철과 아산 정주영의 자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등 창업주의 2·3세들을 비롯해 주요 대기업 오너들이 이에 참가한다. 이번이 박근혜 대통령 집권 후 첫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의 만남으로 전경련 회장단과 상견례를 가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대화의 물꼬가 터져야 한다. 대화의 장에서 용기 있는 기업 총수가 나오고 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됨으로써 정부와 대기업간 불통의 창조경제라는 불명예스러운 엇박자를 내는것 보다 소통의 경제부흥이 될 수 있도록 상호간 이해와 양보를 통한 선도적 행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말이다.

이에 우리는 지난 2010년 ‘품질의 일본’이 간판기업 도요타와 함께 흔들린 사건을 다시 되새김질 할 필요가 있다. 도요타 자동차가 가속페달의 문제 등으로 세계적인 리콜(제조업자 책임 수리) 파문을 일으키면서 일본 자동차산업은 물론 제조업 전체의 신뢰성에 금이 갔던 것이다.

도요타가 어떤 회사인가.

끊임없는 작업공정 개선(카이젠), 부품의 적시공급(Just in Time), 낭비와 비효율을 제거하는 린(Lean) 생산방식 등으로 전 세계 생산관리의 교과서가 되어온 일류기업이다. 도요타를 선두로 하는 일본 제조업은 ‘무결점’을 지향하는 품질 최우선 경영으로 성과를 높여왔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도요타 중고차 가격이 폭락하고, 미국 소비자들이 떼를 지어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물건을 만들어 판 후 뒤늦게 문제를 발견해 리콜하게 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도요타의 대대적인 리콜 사태는 ‘일본 품질 신화의 위기’를 거론할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왜?. 불꽃 튀는 글로벌 경쟁의 와중에서 도요타가, 그리고 일본 제조업이, 고유의 강점을 잃고 좌초하는 징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도요타에 닥침 재앙은 ‘1등’을 향한 무리한 외형 확장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도요타는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던 미국의 GM을 제치고 지난 2008년 세계 자동차 판매고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급속히 생산량을 늘리고 판매 확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요타 최고의 강점이었던 ‘품질관리’에 틈새가 생겼다. 전처럼 꼼꼼하게 협력업체를 관리하지 못한데다 엔화 강세의 불리한 여건에서 생산원가를 줄이느라 계속 납품단가를 후려쳤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부품의 질이 떨어지고, 불량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노동인력의 관리에도 문제가 커졌다. ‘비용절감’에 혈안이 되다보니 종신고용체제는 무너지고 ‘적당히 쓰다 버릴 수 있는’ 비정규직 인력이 늘었다. 퇴근을 마다하고 공정 개선 아이디어를 찾아낼 만큼 책임감과 충성심이 두터웠던 노동자들 대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시간만 때우는 임시직 노동자들이 점점 더 많은 생산라인을 채우게 된 것이다.

도요타의 더 큰 문제는 ‘독선적이고 불투명한 경영’에 있다. 도요타는 제품의 결함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접수될 때마다 운전 잘못 등 소비자 탓으로 돌리거나 적당히 무마해왔다. 또 엄청난 자금력으로 로비스트를 동원해 미국 정치인, 관료들을 구워 삶아서 불리한 행정조치가 내려지지 않도록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국내에서는 연 1000억 엔 이상의 광고 예산을 쓰는 도요타의 눈치를 보느라 언론이 감시와 비판 기능을 포기했고, 지나치게 친기업적인 정부와 경제의 정책기조도 ‘도요타의 질주’를 방치했다. 결국 도요타에 근무했던 미국인 변호사가 내부고발자가 되어 소송을 제기하고, ABC 방송 등 미국 언론들이 추적을 나서자 ‘강둑이 무너지듯’ 도요타의 실상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런 도요타의 사태가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세계 1등’을 외치며 무리하게 외형 확대를 추구하는 대기업들을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중소 협력업체의 납품단가를 후려치고, ‘값싸게 쓰고 쉽게 버릴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리는 것도 너무 흔한 모습이다. 법과 윤리를 존중하는 대신 막대한 자금력으로 언론과 정부, 정계를 움직여 비리를 덮어버리는 현장도 생생하게 목격되고 있다.

그러니, 오늘 도요타에게 쏟아지는 화살이 내일, 삼성, 현대차를 향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현재 국회에서는 재벌기업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지난달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를 통과한 프랜차이즈법(가맹점주 보호), 공정거래법(순환출자 금지·전속고발권 폐지), 금융정보분석원(FIU)법(국세청 정보공유) 개정안 등이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5월7일 내)에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재계의 불만도 증폭되고 있지만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지 않고 투자를 유도해 낼 수 있는 정부의 환경조성과 선뜻 투자에 나서서 일자리 창출, 투명경영, 상생경영 등 파급효과가 실질적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대기업들의 솔선수범적 행동으로 한국경제 경제부흥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