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책임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자

2013-03-03 19:00

영화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배고픈 조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매우 컸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레미제라블의 시대적 배경은 프랑스혁명 후 정치·경제적 혼란기다. 전통과 혁명이 교차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인 장발장의 '책임'이 크게 확대된 것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 전반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총리를 비롯한 장관 후보자들은 행적에 책임을 져야 하고,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인사청문회에서 모두 해명해야 한다. 심지어 자신의 '과거 발언'까지 책임져야 한다. 정치권의 이 같은 기류는 기업에도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특히 경영자의 책임 논란이 뜨겁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최근 신세계와 이마트 등기이사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룹 측은 이미 지난 2011년부터 논의돼온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오너로서 권한은 누리면서 책임은 회피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검찰 소환, 국회 고발, 이마트 압수수색 등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것이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인 만큼 시간이 지나야 시비를 가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오너라고 해서 모두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탁월하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이를 만회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 이병철, 정주영 회장처럼 본인이 창업해 온갖 경험을 한 경영자가 있는 반면 선대의 바통을 이어받는 이도 많다. 전자는 학습보다 직감이 뛰어나지만 후자는 학습이 많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경영수업이 필요한 이유다.

오너 2~3세들이 경영수업을 하는 동안 기업 경영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고, 이를 전문경영인이라고 표현한다. 말 그대로 직업이 경영인 사람이다. 이들은 자신의 노하우를 20~30년 동안 차근차근 쌓아온 사람들이다. 사원에서 시작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책임과 경영을 말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유통을 양분하고 있는 롯데와 신세계 때문이다.

이들의 손에 대한민국 유통의 미래가 달려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두 회사는 현재 레미제라블의 시대적 배경처럼 전통과 혁명이 교차하는 시기에 있다.

전통의 1세대를 뒤로 하고, 혁명과 혁신의 기간을 거쳐 2세대로 바통이 교체되고 있다. 전문경영인의 대리경영(?) 시기도 지났다. 2세인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온 것이다. 책임질 시기가 됐다는 의미다.

경영자에게는 큰 책임이 따른다. 그 자리에 앉은 이후에는 즐거운 일도 많지만 어려움도 적지 않다.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당장 눈앞에 어려움이 닥치고 대표이사로서 책임질 일이 발생했다고 해서 회피해서도 안 된다. 수만명의 직원과 그 가족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이번 '등기이사 탈출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13개, 아들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6개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맡고 있는 것과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기업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지만 이 같은 신조어가 생길 수밖에 없는 배경에 대해서도 곰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