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이 연초부터 여의도 찾는 이유는?
2013-02-05 21:25
'돈줄' 마른 건설업계, 자금 확보·투자홍보 위해 금융·증권가로 <br/>중견사 회사채 상환기간 도래…차환 발행 어려워 '발등에 불'
아주경제 정수영 기자=“위기는 항상 있었지만, 이렇게 장기간 낭떠러지 위에 올려진 기분은 처음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 벌써 5년째 하루하루 잠을 이루기가 어렵네요.”
시공능력평가순위 20위권내 중견 건설업체 A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 L씨. 아침 7시 출근과 동시에 그날 그날 입출금 내역부터 점검하는 그는 임원회의와 업무계획 보고 등이 끝나면 8시30분 서둘러 여의도로 달려간다.
아침부터 증권가로, 은행가로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L씨에게는 최근 급하게 꺼야할 발등의 불이 생겼다. 상환해야 하는 회사채 만기일이 올해 상반기에만 두 차례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금을 갚느라 동원 가능한 모든 자금을 끌어다 쓴 터라 회사채 추가 발행이 아니고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증권회사 임원뿐 아니라 담당자를 만나러 매일이다시피 들르지만, 귀찮다는 듯한 젊은 직원의 표정에 체면을 구기고 돌아오기 일쑤다.
국내 부동산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건설사들이 유동성 자금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특히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PF 대출 부담으로 연초부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건설사 임직원들이 증권·금융회사가 밀집해 있는 여의도로 몰려들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건설사 회사채 만기 규모는 총 6조2000억원. 이 중 신용등급 ‘A-’부터 ‘BBB-’ 사이의 중견건설사는 8곳으로 올해 회사채 상환 만기 규모는 2조1000억원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된데다, 건설업에 대한 인기 자체가 시들해진 터라 회사채 신규 및 차환 발행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PF 대출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권이 자격 기준을 강화하면서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1년 이내 만기가 돌아오는 PF 우발채무는 전체 24조원 중 58%에 이른다.
건설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올해 회사채 등 채무를 갚지 못할 경우 퇴출될 가능성이 큰 시공순위 30위권내 중견건설사가 2~3곳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건설업종 투자에 대한 시장 분위기도 좋지 않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연초부터 많은 건설사들이 기업 투자설명회(IR)에 집중하고 있다. 주가를 부양해야 자금 확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건설사 IR 개최 건수가 전년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났을 정도다.
재무담당도 아닌 B건설사 홍보부장 K씨도 요즘 여의도를 자주 찾는다. 바로 IR 때문이다. 10년 가까이 홍보 업무를 맡고 있는 그는 그동안 부동산 담당 기자들을 주로 상대해왔지만 최근에는 증권·금융쪽 기자들과 만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건설업계에 유동성 자금 압박이 심해지자 증권·금융쪽에서 발생하는 기사 한줄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어서다.
K씨는 “기사 한줄에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하기 때문에 여의도에 주로 상주하는 증권부 기자들을 만나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하루 빨리 건설경기가 좋아져 기자들과 기쁜 일로만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