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력수급의 '마지막 보루', 양양 양수발전소
2013-01-21 12:46
김균섭 한수원 사장 특명, "겨울 전력난, 구원투수는 양수발전소"
‘1호기 기동!’이라는 명령과 함께 수차가 돌아가자 150초 만에 전기생산이 본격화되고 잠시 후 약 25만kW에 도달했다. 양양 양수발전소는 총 4기의 발전기가 100만kW의 설비용량을 갖춰 양수발전소 가운데 국내 최대 규모이며, 상부댐(진동호)과 하부댐(영덕호)의 낙차는 819m로 아시아 최대를 뽐내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큰 양쭈오용(770m), 일본의 가나가와(653m) 보다 크다.
상부댐과 하부댐 사이에는 767m의 국내 최장 수직터널을 비롯해 물을 통과시키기 위한 6㎞의 수로터널이 건설됐다. 15톤 트럭 14만대 분량의 흙을 파냈다. 하부댐에는 1만4000㎾의 전기를 생산하는 소수력발전소, 상부댐에는 3000㎾ 용량의 풍력발전기 2기가 별도로 건설됐다.
김균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이번 겨울 양수발전소에 ‘특명’을 내렸다. 27년만에 찾아온 유례없는 한파로 연일 전력사용량 최고치를 경신하며 아슬아슬하게 전력 수급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양수발전소가 본연의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 겨울철 전력 위기를 극복하라는 것이다. 이는 양수발전이 전력계통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윤봉중 양양 양수발전소장은 양수발전의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전력계통 안정화’라고 강조했다. 윤 소장은 "양수발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고, 알더라도 단순히 전기가 남을 때 물을 퍼올렸다 급할 때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 정도가 대부분"이라며 "양수발전은 불쏘시개 역할 외에도 평상시 전력계통을 안정화시키는 등 여러 가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강조했다.
전기는 일정한 주파수와 일정한 전압이 유지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도체 및 자동차 등 대규모 공장들은 균일한 상품 생산이 불가능, 품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가정도 비슷하다.
그러나 전기 공급량과 수요량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주파수와 전압이 일시에 출렁이게 되고, 일정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최악의 경우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양수발전은 기동성이 뛰어나 정지 상태에서 최대 출력에 도달하는 시간이 불과 3분 이내다. 따라서 양수발전은 돌발적인 사고나 긴급한 부하 변동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상황이 초래될 경우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원전 등 대용량 발전소의 고장 등으로 전력계통이 급격히 불안정해질 경우 전압과 주파수 조절을 통해 고품질의 전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야구로 치면 9회말에 등판한 마무리 투수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송전선로에 연결된 외부 변전소 기기 결함이 발생해 신고리 원전 1, 2호기가 일시적으로 출력을 낮추는 자동 감발에 들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양수발전소가 긴급 투입됐다. 당시 양수 1호기 등 4곳의 양수발전소가 비상상황에 신속히 대응, 주파수와 전압을 정상 조절함으로써 모든 전력계통이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이렇듯 양수발전소는 아찔한 상황에서 제 몫을 톡톡히 수행한다. 양수발전을 ‘3분 특공 대기조’ 또는 ‘구원투수’라고 부르는 이유다.
통상 한밤중에 전기가 공급량이 수요량을 초과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때는 기저부하를 담당하는 대형 석탄화력, 원전 등의 발전량을 줄이거나 정지시켜야 하는데, 시스템 상 용이하지 않고 많은 시간과 비효율적 요소가 발생하여 한계가 있다.
이때는 전기 소비를 늘려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춰줘야 하는데 이러한 역할을 바로 양수발전이 담당한다.
양수발전은 전력수요가 적은 심야의 잉여전력을 이용, 하부댐의 물을 퍼올려 상부댐에 저장했다 전력 수요가 급증할 때 물을 낙하시켜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다. 양수발전은 타 발전원과 달리 전력을 간접 ‘저장’하는 셈이다.
만일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해 국가의 모든 전력이 상실됐을 경우에도 양수발전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전체 전력이 사라졌을 경우 가장 빠르게 전기 생산이 가능한 양수발전이 ‘불쏘시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양수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는 그 다음으로 빠르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인근 가스터빈 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에는 양양(발전용량 100만㎾)을 비롯해 청평(40만㎾), 삼랑진(60만㎾), 무주(60만㎾), 산청(70만㎾), 청송(60만㎾), 예천(80만㎾) 등 모두 7군데에 양수 발전소가 있다. 총 발전 용량은 470만㎾로 국내 전체 발전 설비용량의 5.7%를 차지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5기의 용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양수발전소는 빼어난 풍광과 거대한 지하발전소, 특이한 어도 등으로 관광객도 불러모으고 있다. 상·하부댐을 연결하는 조침령 도로(9.7㎞)를 통해 상·하부댐을 20여 분 만에 오갈 수 있다. 인제군은 진동계곡 등과 연계해 관광상품을 선보였고 양양군은 인근 송천 떡마을, 어성전 탁장사마을 등과 연계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