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인터뷰> "이 시대의 해답은 생명 자본주의"
2012-12-02 16:54
오는 7일 제4회 한중일 문화 심포지엄 개최
아주경제 이규진 기자=제4회 한중일 문화 심포지엄 준비로 바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지난달 30일 중구 서소문 연구실에서 만났다. 팔순을 맞은 나이에도 여전한 열정과 시원시원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이한다. 저술과 학술활동으로 바쁜 한국의 대표지성 이 전 장관이 건강하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다. 한중일 문화심포지엄은 지난 3년 한국과 중국, 일본을 돌아 다시 한국에서 4회를 맞았다. 오는 7일 이화여대 삼서교육문화관에서 열린다. 그동안 연구성과와 현 시대의 대안에 대해 들어봤다.
이어령 전 장관은 유럽의 재정위기 미국의 경기불황 등 글로벌 경제 전망이 악화된 가운데 “이 시대의 패러다임은 생명자본주의”라며 해법을 제시했다. 이어령 전 장관은 자본주의 시대는 막바지에 다다랐으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경제를 비롯해 모든 분야의 패러다임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본주의 상징인 미국의 월가에서 금융쇼크, 소련 붕괴 등 기존 자본주의 사회주의 폐해는 이미 드러나고 있다”며 “산업화·민주화를 이룩한 이 시점에서 새롭게 맞이해야 할 패러다임의 근본이 생명이다”고 명했다.
생명 자본주의란 생명에 대한 가치를 인지하고 이를 토대로 산업을 비롯한 경제 활동에 접목시키는 것을 일컫는다. 이 전 장관은 “육아·복지 등 국가 및 시장에서 관리하던 체제를 민간을 중심으로 가치를 공감하고 실천해야 한다”며 “상호 거래 수단이 돈이 아닌 마일리지를 이용한 카드, 아파트 단지내의 품앗이 등이 생명 자본주의 활동이라 보면 된다”고 말했다. 마음을 표현하는 다른 커뮤니케이션으로 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근대화 산업화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꿔야한다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다.
◆ "물질은 풍부한데 정신은 빈곤하다"
이 전 장관은 현 시대의 자본주의 폐해를 꼬집었다.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합리적인 제도로 비춰왔지만 많은 문제점을 양상한다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질의 과잉되면서 사람들이 물질에 대한 애착이 무한대로 커진다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이 필요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술 작품에 대한 애착처럼 무한대가 되고 있다. 특히 가족에 대한 애정도 물질 애착으로 엮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물질 만능주의의 폐단이라고 경고했다.
예컨대 무엇을 사랑한다고 해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돈이라는 자본이 존재하는 한 진심의 척도를 가늠할 수 없다. 물질의 과잉이 사람 간 진솔한 커뮤니케이션에 방해가 된다. 그는 “지금까지 금융·산업 시스템 등이 사회의 암울한 측면을 조장했다”며 “시장 제도를 유지하면서 고치기 위한 방법은 생명 자본주의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대가 주는 것이 있다면 되려 빼앗는 것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옛날에는 물질이 없었는데 오히려 나누면서 마음은 풍요로웠다”라며 “지금은 물질은 풍부한데 정신은 빈곤하다”고 덧붙였다.
◆ 미래 자본은 물질이 아닌 생명
이 전 장관은 생명 자본주의의 자본은 △생명 △장소 △창조라고 정의했다. 앞으로 새로운 시대가 필요한 자본은 물질이나 산업 기술이 아니라 애정을 통한 가치라는 설명이다. 전통 경제는 끝났고 신세계로 들어서는 단계라며 생명 자본주의가 실현될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지 세금을 올려서 부를 쌓을 수 없다”며 “개인이 공감하고 감성이란 인적 자본으로 정치·경제 활동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생명 가치가 모든 생산 수단과 목적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타이타닉호에 있던 사람들에게 1등석과 3등석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배가 침몰하기 전날 밤에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뜨렸다고 해서 그 행복이 얼마나 갈 수 있겠나”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생명 자본주의와 유사한 사상을 가진 인물로 존 러스킨을 꼽았다. 이 전 장관은 “생명 자본주의의 족보를 굳이 따지자면 러스킨이라고 볼 수 있다”라며 “러스킨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생명 자본주의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술·문학 등 예술적 성향이 뛰어난 러스킨은 전통파 경제학을 지적하고 인도주의적 경제학을 주장했다. 산업화가 강요하는 기계화와 획일화를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하고 인간성을 회생시키는 생산체제가 필요하다고 외쳤었다.
◆ 문명의 축은 서양에서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서방 중심의 문명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과 미국이 경제 패닉상태까지 빠진 반면에 아시아의 경제·문화는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이탈리아 등 남유럽발 재정위기는 전 유럽에 확산되면서 심각한 경기침체를 야기시키고 있다. 미국도 지난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중산층이 몰락하고 실업률은 8%대로 치솟았다. 반면 중국과 한국은 두드러진 성장세로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는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유럽 미국과 달리 중국을 비록한 아시아 지역은 경제적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다”며 "큰 문명의 물결이 아시아 쪽으로 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계속되는 분규 속에서 아시아 지역의 안전성을 내세웠다. 분규가 테러 등 직접적인 공격으로 이어진다면 경제에 큰 피해를 입힌다. 그러나 아시아의 경우 분규가 일어나도 실질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같은 걱정을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테러 위험이 거의 없다”며 “한국·중국·일본은 정치와 경제, 안보 등 여러가지 분야에서 공통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은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다. 중국에서 반일감정이 고조되면서 일본 산업에 타격을 주고 있으나 양국은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 있는 상태다. 이 전 장관은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완화시킬 수 있는 요인은 각국의 지식인 개인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외교에서 주된 열쇠가 된다는 얘기다. 그는 “영토분쟁은 하루 아침에 해결할 수 없으며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개인 네트워크다”라며 “공적인 문제를 문화를 공감하거나 지식인의 대화로 풀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 전세계를 꽝 울리는 문화 혁명
이 전 장관은 문명을 뒷받침하는 것은 문화 자본이라고 전했다. 경제가 풀지 못하는 사회 현상을 문화는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이다.그는 "문화가 가진 힘은 무한대며 문명의 물결을 이룰 수 있다"며 "문화 산업은 국가 경계를 넘어 탈국가적 공동체를 만들 수 있으며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전 장관은 전세계에 공감할 수 있는 미디어 네트워크가 만들었기 때문에 문화 자본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이 사장이고 발행인인 미디어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개인 미디어는 국가 및 기관이 접근하지 못한 부분까지 흡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개인 미디어로 유투브를 꼽았다. 그는 " 싸이의 말춤은 유투브를 통해 히트 쳤다"며 "유투브를 통해 전세계가 싸이의 춤과 노래를 공유하고 열광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개인 미디어를 통해 한류문화를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류문화는 아시아를 넘어 이제 미국과 유럽까지 진출했다"며 "체계적인 한류문화 분석을 토대로 넓은 시야의 한류, 함께 공유하는 한류를 만들어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제4회 한중일 문화 국제신포지엄도 한류와 같은 대중문화의 창조성에 대해 분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중일 세국가의 석학들이 문화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어떤 창조적인 원동력이 되는지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