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대다수 삭감…'논란'

2012-11-28 09:48
의회 "형평성·구체성 결여됐다" Vs 시 "제도 취지 무색"

아주경제 이준혁 기자=서울시가 주민참여예산제로 채택한 내년 다수 사업의 예산이 시의회에서 삭감돼 논란이 되고 있다. 시의회는 자치구간 형평성과 사업 중복 등을 고려해 예산안을 예결위원회에 상정되기 이전에 상임위원회에서 거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는 올해 처음 도입한 주민참여예산제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8일 서울시와 시의회에 따르면 지난 26일 문화디자인관광본부·여성가족정책실을 비롯 일부 상임위는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선정된 사업의 예산을 대부분 삭감했다.

여성·가족분야 사업 중에서는 △청소년 전용클럽 힐링캠프 운영(11억원) △청소년누리터 조성(5억원) △토요마을학교 운영(5억원) △한부모가정 이해교육강사 양성교육(5800만원) △다문화가족 서울속 궁궐 나들이(1200만원) 등의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문화분야 사업에서는 △4·19문화제 지원(2억9000만원) △'지붕없는 동네미술관 마을' 조성(3500만원) △리폼 바느질 공방 지원(4200만원) 등의 예산이 모두 깎였다.

경제진흥실과 복지건강실 관련 예산안은 이날 해당 상임위 심의를 앞두고 있다.

아직 예결위 심의 절차가 남아있다. 하지만 시의회 측에서는 "예결위에서도 상임위 논의 사안을 존중하는만큼 이번 결과가 크게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시는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한 사업이 상당수 백지화된 데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시는 지난 9월 시민제안사업 선정을 위한 참여예산한마당을 개최해 총 500억원 규모 132개 주민참여예산을 선정했다. 이와 관련 시의회는 지난 5월 관련 내용이 담긴 '서울특별시 주민참예예산제 운영 조례'를 통과시킨바 있다.

시 관계자는 "주민 250명이 위원으로 참여해 3개월여에 걸쳐 투표로 선정한 사업들"이라며 "특정지역에 편성됐다고 삭감한 건 지역환경에 맞게 주민이 사업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주민참여예산제의 당초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 관계자는 "주민참여예산제도 자체가 시의원의 발의로 제정된 조례에 근거하는 것인데, 시의회에서 사업을 반려하는 것은 모순적인 태도"라고 지적했다.

시의회 측은 예산 심의는 의회가 가진 고유 권한이라며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올라온 사업 대다수가 지역간 형평성을 저해하고 구체성이 결여돼있다"고 반박했다.

한 시의원은 "주민참여예산안으로 올라왔다고 의회에서 모두 동의하면 의회는 거수기"라며 "10만명의 대표인 의원도 1명당 2억~3억원씩 사업을 예산안에 올리는데 '주민참여'란 이유로 수십억대 사업이 쑥쑥 들어와도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주민참여예산제가 태생적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는데다 직접민주주의와 대의제 간 모순 때문에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풀이했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주민참여예산제는 소액이지만 시민이 예산 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해 지역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동시에 대의제인 의회 권력과 모순되는 측면도 있다"면서 "올해가 시행 첫 해인만큼 장점과 한계를 조정하는 과도기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 토론을 거쳐 스스로 사업을 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그 사업의 타당성을 심의하는 것도 의회의 제도적 고유 권한"이라며 "사업 타당성·계획성을 갖춰 의회를 설득하는 것은 집행부 몫이며 그게 정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