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용산역세권 개발 난항… 서부이촌동 주민 "이제는 지쳤다"
2012-10-19 09:42
수년째 지연, 재산권 막대한 손해… 서울시에 원성 자자<br/>"개발 포기하자" vs "여기서 멈춰선 안된다" 찬반 나뉘어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 방식을 놓고 사업자들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사업구역인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철거 대상인 대림아파트 전경. [김현철 기자 honestly82@] |
아주경제 김현철 기자=“드림허브가 이제 서부이촌동에서 손을 떼어 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대림아파트 생존권사수연합회 관계자)
“그동안 보상만을 믿고 기다려온 사람들은 이제 갈 곳이 없습니다. 용산역세권 개발 주체인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이 서로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하지 말고 원만히 합의해 개발이 최대한 빨리 진행됐으면 좋겠습니다.”(아름다운상가 세입자추진위원회 관계자)
총 사업비 30조원 규모의 용산국제업무지구(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이 진퇴양난에 빠지면서 사업 구역에 포함된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주민들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시범 아파트 앞에 위치한 비어있는 공인공개업소. |
◆용산역세권 개발 놓고 주민 갈등 고조…“서울시가 원흉”
용산역세권 개발구역에 서부이촌동을 포함시킨 현재의 통합개발안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아예 이곳을 제외시켜달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대림아파트 생존권사수연합회 김재홍씨는 “현재 아파트값의 2배를 줘도 필요 없다”며 “더 이상 용산국제업무지구 시행사인 드림허브(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를 믿을 수 없으니 서울시는 이제 서부이촌동을 개발 대상에서 빼달라”고 언성을 높였다.
개발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사업이 무산되면 시행사가 약속한 ‘내년 하반기 보상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주인 이모씨(45)는 “이 상태로 가다가는 용산 사태와는 비교도 안 될 제2의 용산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두 갈래로 찢어져 있는 주민들도 서울시가 원흉이라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 한다.
서울시는 인·허가권을 내세워 사업 초기인 2007년부터 이 사업에 개입했다. 당시 오세훈 전 시장은 이 사업을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연계시킬 것을 요구하며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서부이촌동을 개발 계획에 포함시켰다.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 방식을 놓고 사업자들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사업구역인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철거 대상인 동원 아파트 전경. [김현철 기자 honestly82@] |
주민 오주영씨(가명·50)는 “오세훈 전 시장이 서부이촌동 주민 모두를 들뜨게 했다. 당시 전국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조차 ‘주민들이 눈빛만 봐도 살아 있다’는 말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 이후에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뜻을 밝혀 주민들은 일단 찬반 투표를 기다리는 중이지만 투표 일정이 마냥 지연되고 있다.
아름다운상가 세입자추진위원회 양성부씨는 “시가 주민들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한다고 하지만 나중에 소송이 이어질 때를 대비해 ‘우리는 주민들 의견을 수렴했다’는 법적인 증거를 마련하는 것 같다”며 시의 ‘책임 회피용’ 방안을 비난했다.
철거 대상인 대림아파트에 붙어있는 현수막. |
◆개발사업자간 주도권 다툼 속 사업 좌초 위기 몰려
용산역세권 주요 개발사업자인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이 사업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갈등은 주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양상이다. 코레일은 기존 통합개발을 단계개발로 전환하자고 요구하고 있고, 롯데관광개발은 이에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코레일 안팎에서 “단계 개발로 전환하면 보상시기를 2~3년 미루는 대신 보상은 확실히 해주겠다”는 얘기가 들리자 통합개발에 찬성하던 주민들조차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로 돌아서고 있다.
지분 문제가 사업 주도권 다툼의 핵심 쟁점이다. 현재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의 드림허브㈜ 지분은 각각 25%, 15.1%로 코레일이 1대 주주이지만, 드림허브로부터 사업 추진을 위탁받아 실무를 추진하는 자산관리위탁회사인 용산역세권개발㈜(AMC)의 지분은 롯데가 70.1%로 코레일(29.9%)보다 훨씬 많다.
전체 사업에 대한 지분은 많지만 설계·발주·보상·분양 등 실무를 담당하는 AMC의 지분이 적은 만큼 코레일 측은 롯데관광개발이 삼성물산에서 인수한 AMC 지분(45.1%)을 넘겨받고 사업의 주도권을 쥐고 사업계획도 단계적 개발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코레일은 AMC의 삼성물산 지분을 양도받는 안이 19일 이사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사업에 불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동원아파트 입주자 한모씨(70)는 “이날 이사회에서 큰 결정이 날 것처럼 이야기가 나오지만 결국에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며 “사업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든 간에 더 이상 보상이 지체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철거 대상인 대림 아파트 앞에 걸려있는 현수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