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아주중국> 18차 전대회 특집-미리보는 중국 10년

2012-09-27 17:12
중국의 10년 리더십과 후계 선발 제도<br/>글 최헌규 기자


◆ 시진핑(習近平)시대의 인물들 윤곽
중국 공산당의 전당대회인 18차 전국대회표대회(18차 전대회, 18대)가 임박해 오면서 중국 차기 지도부의 진용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10월 중하순께 제18차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해 새로운 당 지도부를 구성한다. 이른바 5세대 지도부를 구성하는 이번 대회는 정치 외교 군사 경제 사회분야에 걸쳐 향후 10년간 ‘중국호’가 나갈 큰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8차 전대회는 우선 중앙위원회를 구성한다. 그리고 중앙위원회는 제1차 전체회의( 18기 1중전회)를 개최해 중앙위 정치국위원과 상무위원을 선출하게 된다.

지난 10년간(2002년~2012년) 중국을 이끌어왔던 후진타오(胡錦濤)당 총서기와 원자바오(溫家寶)국무원 총리는 이번 18차 전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직을 내려놓을 예정이다. 주석직은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넘겨받지만 중국이 공산당 1당 독재체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은 이번에 사실상 권력을 승계하게 된다.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도 내년 3월 전인대에서 정식 국무원총리가 된다.

중국 정치의 특성상 권력이양과 관련해 결정된 부분이다 보니 전해진 내용은 많지 않다. 차기 지도부 구성과 관련돼 이제껏 공식 발표된 사안으로는 지난 7월 궈진룽(郭金龍) 베이징시장이 베이징시 서기에 올라섰으며, 지난 1일 리잔수(栗戰書) 전 구이저우 서기가 공산당 중앙판공청주임으로, 링지화(令計劃) 중앙판공청 주임이 통일전선부장으로 옮겨간 정도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최근 리위안차오(李源潮)가 시진핑 시대에 국가 부주석에, 궈성쿤(郭聲琨) 현 광시(廣西)장족자치구 서기가 리위안차오를 이어 당조직 부장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홍콩의 한 인터넷 매체는 류윈산 (劉雲山)당 중앙 선전 부장이 정치국상무위원에 진입, 국가 부주석이 될 것 이라고 전했다.


◆ 최고지도자 어떻게 선발되나
10년만의 권력교체기를 맞아 중국 정가가 부산한 모습이다. 18차 전국대표대회(18차 전대회)의 안건은 크게 당장을 손질하는 것과 17기(17차전대회기간 5년)활동을 회고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안건은 18차 전대회가 종료되고 바로 열리는 18기 1중전회(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시진핑 국가 부주석(정치국 상무위원)는 이번 대회에서 후진타오 총서기로부터 관측대로 총서기직을 물려받는다. 또하나의 관심사는 시 부주석이 이번에 군권을 쥔 당 중앙군사위주석직도 함께 물려받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 16차 전대회(2002년)때 장쩌민은 후진타오에게 총서기직만 이양한 뒤 2004년 9월 군사위주석직을 이양한 바 있다.

중국은 다른 서방 국가와 달리 최고 지도자 배출에 있어 정파간 협상에 의해 결정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취하고 있다. 경제체제에서 ‘중국식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고유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듯 정치 권력교체에 있어서도 역시 독특한 방식을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신중국 설립 이후 오랫동안 최고지도자의 지명 형식으로 후계자를 결정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다만 최근 들어 집단지도체제에 의한 계파 간 협상의 산물로 최고지도자(당 총서기 및 국가주석)를 배출하는게 관례가 되고 있다. 또한 1992년 이후에는 10년 주기의 권력 교체가 제도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신중국 설립이후 권력이양을 보면 마오쩌둥(毛澤東)이 화궈펑(華國鋒)을 후계로 지명했고, 화궈펑에 이어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鄧小平)은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까지 후계로 정했다.

마오쩌둥은 제일먼저 후계로 삼았던 류사오치(劉少奇)를 노선갈등 끝에 문화혁명 와중에서 희생시키고 이어 린뱌오(林彪), 덩샤오핑을 염두에 뒀다 실패한 뒤 사망 직전 화궈펑을 최종 후계로 선택했다.

마오 사후 투쟁으로 권좌에 오른 덩샤오핑은 1978년 개혁개방 후 후야오방(胡耀邦)을 후계로 지명했다가 너무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1987년 축출했고 이어 자오쯔양(趙紫陽)을 후계로 삼았으나 자오 역시 1989년 6·4 천안문 사태로 실각하고 말았다.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전권을 행사했던 덩샤오핑은 당시 자오쯔양에 이어 장쩌민을 공산당 총서기에 지명했다. 이어 장쩌민은 1992년부터 2002년 16차 전대회(11월 8일 개막)까지 10년간 총서기 직을 수행한 뒤 후진타오에 바통을 넘겼다.

다만 장쩌민의 후계인 후진타오는 장쩌민의 낙점이 아니라 덩샤오핑이 지난 1992년 전국대표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발탁, ‘포스트 장쩌민’으로서 후계 수업을 받도록 했다는 게 정설이다. 장쩌민은 후계자로 후진타오 대신 자신의 계열인 상하이방 측근 인사 쩡칭훙(曾慶紅)을 염두에 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의 시진핑 국가 부주석은 집단지도체제에 의한 전형적인 계파간협상의 산물로서 시진핑이 후계자라고 하는 어떤 언질도 없었다. 계파 간 물밑 협상끝에 2007년 17차 전대회(10월 15일 개막)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발탁됐고 2008년 3월 전인대(국회)에서 국가 부주석에 선임됨으로써 사실상의 후계로 여겨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