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극사실화가 이석주 "2년간 헤지고 낡은 책만 주시했어요"

2012-09-04 23:54
5일부터 노화랑서 14회 개인전..'서정적 풍경'벗고 '사유적 공간'으로

이석주 신작. 사유적 공간.116cm*112cm.2012

5일부터 개인전을 여는 극사실화가 이석주 화백.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나는 책이다'.
이제는 '너덜너덜한 거대한 책'으로 돌아온 그는 "억지로 꾸미기싫다.단순해지고 싶다"고 했다.
5일부터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제 14회 개인전을 여는 중견작가 이석주(60·숙명여대 미대교수)다. 20여점을 선보이는 이번전시에는 오롯이 '책'만 담겼다. 여인, 하늘등이 함께한 이전 '책 그림'과는 달리 배경을 모두 제거했다. '이석주 그림'하면 떠오르는 말 기차 낙엽 시계도 사라졌다.

노 화랑에서 만난 작가는 말수가 더 적어진 듯했다. 이번 전시서문에는 평론가의 글없이, 자신이 직접 서문을 썼다.
작가는 "트릭없이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자"며 '책'만 보며 2년간 매달렸다고 했다. 현미경 같은 정밀함으로 관찰하고 응시했다.먹고자는 시간빼곤 하루종일 책과 마주했다.

"책을 소재로 한 이번 작업에서는 과거 여러 이미지의 결합을 통한 데페이즈망의 초현실성과 스토리 연출보다는 책이라는 소재의 대상자체의 사실성에 집중했습니다."

'책의 존재'에 집중한 이번 작품들은 접사렌즈로 들여다본 것처럼 세심하게 그린 극사실화다. '진짜 책'이 눈앞에 있는듯한 공감각적 환상까지 선사한다. 책은 '문명의 시계'라는 작가는 책이야말로 개별성 독립성 단순성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소재라고 했다.

"사물의 실체를 보기위해서는 집중을 통한 응시, 즉 주시가 필요합니다. 대상에 집중하면 대상만 보이고 대상을 보는 주체에만 집중하면 그 대상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가 책을 주시하면서 만난 건 '자신'이었다고 한다. "사실을 보고 사실을 표현하려는 대상에 대한 접근 방법"은 자기인식의 극명한 존재감을 상징한다.

90년대 중반부터 발표한 말과 시계가 든 '서정적 풍경'은 이석주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초심으로 돌아온걸까. 1970년대 추상미술이 득세하던 시기, “왜 보이는 대로 그리면 안 되냐”며 선배 교수들에 대항하며 국내 현대미술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젖힌 주인공이다. 작가는 주태석·고영훈·지석철 작가와 함께 ‘홍대 극사실화풍 4인방’으로 유명하다. 국내 하이퍼 리얼리즘 회화의 한 축을 지탱해 온 작가다.
70년대 말 그의 초기작업은 벽을 확대한 실제같은 거친 벽돌이 압도적이었다. 작품제목도 '벽'이었다. 80년대에는 도시와 인간이 만들어내는 순간상황을 포착한 '일상'시리즈를 발표해왔고, 90년대 중반부터 발표한 '서정적 풍경'은 '시간의 흐름'을 잡아냈다. 기차 의자 시게등의 인공물과 꽃, 들판과 하늘등 자연물의 오브제를 결합하여 꿈과 현실, 상상과 실재의 관계를 넘나드는 현실너머의 내면풍경을 보여줬다.'서정적 풍경'은 이제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사유적 공간'으로 변했다.

이석주 신작 사유적 공간.

"그동안 내면풍경을 탐구했다면 다시 현실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담기위해 노력했어요. 객관적 사실로만 보기위해 밀도를 높였지요."
실터럭 하나하나의 존재감을 고스란히 살려낸 작품은 극사실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응축된 작품은 더디게 나온다. 100호크기 작품은 꼬박 한달을 매달려 완성한다. 흰 캔버스에 에어브러시를 사용해 매끈한 화면은 아크릴 물감 위에 끈적끈적한 유화를 덧발라 더 단단해지고 깊어진다.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손맛은 사진도 구현해내기 어려운 미묘한 디테일들을 잡아낸다.

"사실을 사실로 보고 그렸다"는 작가의 말과는 달리 낡아서 헤어진 책 귀퉁이와 겉장이 닿아버린 책들은 '외로운 섬'같다. 웬지 '처연한 이석주표 느낌'은 여전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린다는게 참 어렵더군요. 사물을 정직하게 보기가 힘들더라고요.허허~." 전시는 25일까지.(02)732-3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