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와 포퓰리즘

2012-08-16 18:00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최근 정치권에서 가칭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대부분 경제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며 평등을 강조하는 내용들이다. 경제민주화 법안의 개수가 개별 정당의 경제민주화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어버렸다. 정치권은 경제민주화 달성이 모든 국민들의 바램이고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곧 있을 대통령 선거를 대비해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아니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결국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하는 경제질서와 가치가 무엇인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 마다 견해가 다를 것이므로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최종적인 가치판단 기준을 제공해 주는 헌법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헌법 제119조1항에서는 ‘자유시장질서를 기본으로 한다’하고 규정하고 있다. 제119조2항에서는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1항과 2항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경제질서가 달라진다. 2항에 기초한 경제민주화 법안들에 대한 평가 역시 달라진다. 조문의 구성상 1항이 원칙이고 2항이 보완규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정치권에서는 2항이 원칙이고 1항의 경제적 자유는 경제민주화의 범주 내에서만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헌법 제1조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영역에서 민주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경제민주화’가 ‘경제적 자유’보다 당연히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다수가 경제민주화를 원하고 있으므로 이것의 정당성에 더 이상 토를 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해야할 경제민주화를 이렇게 이해할 경우 이것은 포퓰리즘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헌법은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의 남용을 경계하고 있다. 헌법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국민 다수의 결정이라면 모든 것이 정당화 되는 가치중립적 민주주의가 아니다. 다수의 결정으로도 결코 바꾸지 못하는 것이 있는 가치구속적 민주주의다. 그러한 가치 중의 핵심이 헌법 전문(前文)에서 천명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다. 이것의 핵심으로 헌법재판소는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를 들고 있다(89헌가113). 경제민주화 정책이 넘을 수 없는 내용적 한계이다. 또한 경제민주화 정책을 추구하는 방법에도 한계가 있다. 정책의 목적이 정당해야 하며 경제적 자유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막연하고 추상적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경제적 자유를 제한해서도 안된다. 국가권력의 남용을 통제하기 위한 헌법상 법치국가 원칙들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경제민주화’ 논쟁에 가려 ‘경제성장’ 담론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이 시점에서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 (Why Nations Fail)”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책 제목이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사유재산권 보호, 계약보호, 신규사업의 용이성, 법치주의, 경쟁적 시장, 자유로운 직업선택 등 시장의 역동성을 담보하기 위한 경제제도들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제도들은 한 국가의 정치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므로 그 국가가 어떠한 정치제도를 갖추고 있느냐가 경제발전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주장에만 급급한 우리나라 정치권이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1인1표의 정치민주주의는 포퓰리즘 민주주의로 전락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헌법이 제시하고 있는 내용과 방법상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는 경제민주화는 포퓰리즘적 구호에 불과하다. 최근 정치권에서 쏟아내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이러한 포퓰리즘이라는 덫에 걸려든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