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잘 나가는 선배님 용돈 좀 주세요"
2012-06-11 16:00
아주경제 장기영 기자= 한 국내 보험사 사장은 최근 출신 대학으로부터 모교 학보(學報)에 기업광고를 실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대학의 요구를 흔쾌히 수락할 경우 자칫 모교 챙기기에 회삿돈을 유용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학들은 이처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동문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다. 이른바 잘 나가는 동문들에게 장학금을 명목으로 기부금을 요구하거나 학교 이름을 내건 단체장을 맡기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부 대학의 경우 후배들이 직접 동문 선배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 교내·외 행사 후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몇몇 보험사는 CEO의 모교에서 금전 문제를 거론하는 연락을 받은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실제 협찬 여부나 규모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특히 해당 CEO가 갓 선임됐거나 그룹 계열사 사장단 중 막내뻘에 해당하는 경우 더욱 조심스럽다. 보험업계에서는 CEO의 모교에서 요청한 후원금을 사내 관계 부서가 집행하는 관행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CEO에 오르는 기업인 중 상당수는 모교의 격려와 환영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례도 적지않게 발생하고 있다. 일부 기업의 경우 CEO가 모교에 낸 후원금이 말썽이 돼 노동조합 등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모교의 요청에 난감한 입장에 처한 일부 인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지갑을 열어 후원금을 내는 사례도 있다. 이처럼 CEO 본인이 사재를 털어 모교에 후원금을 쾌척하는 경우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겠지만 회사가 후원금을 출연할 경우 문제가 달라진다.
회사에서 대납하는 후원금은 각 기업의 경영 자금이자 고객들의 돈이기 때문이다.
대학과 동문의 두터운 우정이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대학과 기업의 뒷거래로 전락하지 않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