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소주병조각이라고 함부로 차지마라'
2012-03-07 00:50
삼성미술관 플라토, 배영환 개인전 '유행가-엘리제를 위하여'
플라토 미술관 입구를 장식한 디오니소스의 노래.2008/(메이플비치골프&리조트 소장)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전시장의 화려한 초록의 샹들리에가 사람들을 홀린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헉! 이게 뭔가?” 싶다
치렁치렁 매달린 것은 큐빅이나 빛나는 유리공예가 아니다. 만지면 손이 베일 듯 너덜너덜 날카로운 흔적을 그대로 가진 유리 조각들이다.
깨진 술병조각들을 이어붙여 만든 이 작품은 설치미술가 배영환(43)이라는 작가를 알린 ‘배영환표 재료’다
‘아주 럭셔리하고도 궁상맞은’ 이 작업은 작가의 집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야경을 닮았다. 밤을 잊은 동물 부엉이와 역시 밤을 밝히는 조명기구 샹들리에를 하나로 합체시킨 ‘불면증’시리즈의 한 작품이다.
밤을 대낮과 같이 밝히는 휘황찬란한 도시가 사실은 남루한 우리의 현실을 이면에 감추고 있고 수많은 경쟁과 고민속에서 우리들은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작가의 자문이 담겼다.
깨진 소조병조각을 이어붙여 만든 (디오니소스의 노래)샹들리에 부분. |
배영환은 깨진 소주병과 알약, 본드등 일명 하위문화적 재료로 흘러간 유행가를 시각화함으로써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을 조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유행가만큼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없다”면서 유행가에 내재된 인간적 감정과 낭만성에 주목했다.
집단의 문제에 사적 감수성을 개입시킴으로써 그는 한국의 비판적 현대미술 영역에서도 독자적 위치를 점유할 수 있었다.
국내 사립미술관 최고봉, 삼성미술관 플라토(부관장 홍라영)는 올해 첫 전시로 배영환을 선택했다.
1일부터 5월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배영환의 그동안 15년간의 예술적 여정을 집중 탐색할수 있다.
“저 한테는 낮선공간에서 전시를 하게 되어 스스로 많은 생각이 들고, 사람들의 평가도 궁금해집니다. 그동안 팔 다리 등짝이 따로 전시됐었는데 이번에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저의 전신, 전체가 다 보이는 거울인 것같아서 생경하지만, 괜찮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번 전시는 누추하지만 사연이 담긴 낡은 재료와 유행가의 대중적인 감성를 특유의 조형감각으로 재구성한 초기작부터 사유의 깊이 더해 사회참여적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최근의 대규모 설치작업까지 총 30여점의 작품이 출품됐다.
전시 타이틀은 ‘유행가-엘리제를 위하여’다. 전시제목은 유행가처럼 길거리에 흘러 넘쳐서 이제는 통속적인 것이 되어버린 클래식 음악 ‘엘리제를 위하여’에서 차용했다.
우리사회 곳곳에서 마무하게 되는 엘리제는 누구인지 알수 없는 또는 대단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 자신을 지칭한다.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전시장에 흐르는 밥딜런의 팝송이 마음줄을 잡아끈다. 추억 낭만…. 울컥해지면서 딱딱하던 정신이 흐물해진다. 유행가의 힘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초기작과 달리 최근작은 절제된 응축의 미학을 보여준다.
황금의 링-아름다운 지옥.2012. |
전시장 입구에 있는 ’황금의 링-아름다운 지옥‘은 텅비어 있지만 에너지로 가득하다.
플라토에 상설전시되고 있는 로댕의 ’지옥의 문‘과 ’깔레의 시민‘앞에 전시되어 묘한 대비를 이루며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다. 4/1로 축소된 작품이지만 3m가 넘는 대형 황금색으로 빛나는 링에는 권투글러브만 놓여있다. 텅비어 있는 링. 그럼에도 피를 흘리며 싸우는 두명의 투명인간들이 연상된다.
“사람들은 이 도시에 살려고 오지만, 내가 보기엔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모두 죽어가는 것 같다.”(릴케, 말테의 수기중에서)
작가는 릴케처럼, 서울 대도시를 바라보며 느끼며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황금에 눈이 먼‘ 사람들처럼 욕망과 성공을 쫒아 대도시로 몰려오는 상황을 황금 링에 담았다.
“복서는 상대가 없을 때 가상의 상대를 생각하며 춤추듯 자신만의 복싱 스킬을 연마하는데 이 행위속에는 혼자 있어도 늘 누군가와 싸워야 한다는 강박증과 강한 자기를 확인해야만하는 자기 최면이 중첩돼 있다. ”
배영환은 “작업의 힘은 지금(Now)에서 나온다”고 했다. “작품이 사회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그는 “앞으로도 사회성을 획득해내면서 초기 유행가작업보다 더 거칠어질 것 같다”고 했다. 초기작보다 최근작에서 좀 정제된 것다는 질문에 대한 말이었다.
배영환작가.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2004년 광주비엔날레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가, 2007년 에르메스코리아상 후보작가전등 국내외 주요전시 를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다. |
배영환은 무모하고 부끄럽지만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 나오는 구절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식인이란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다. 정의와 자유, 선과 진실, 인류 보편의 가치가 유린당하면 남의 일도 자신의 일로 간주하고 간섭하고 투쟁하는 사람이다.”
연약하면서도 날카롭게 날을 세운 유리파편으로 상처받고 번민하는 예술가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가는 사회참여적인 미술을 지향한다.
소수자 프로젝트-노숙자 수첩, 서울농학교, 맹학교 담장 수화 점차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퀴어영화제등에도 적극 관여해 한때 커밍아웃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하지만 그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예술가의 작업이란 우리들 삶의 비참함을 드러내고 사회를 향해 싸우기보다는 스스로을 위로하고 우리안의 존귀함을 이끌어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플라토미술관은 배영환의 작품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플라토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전시기간 매일 점심 12시 30분 직장인을 위한 ’10분 토크‘가 열린다. 도슨트 설명과 함께 전시를 감상할수 있다.
오는 23일 오후 2시 열리는 ’배영환 작가 강연회‘도 준비됐다. 홈페이지에서 신청접수하면 된다.전시설명은 화요일~일요일 오후 2시,3시,4시 5시 열린다. 입장료 어른 3000원. 초중고생 2000원. 1577-7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