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일하는 복지 어디까지 왔나

2011-11-16 23:43
재정 악화된 유럽형 복지국가 모델 '요람에서 무덤까지'..."더 이상 책임 못 지겠다"

(아주경제 이규진 기자) “요람에서 무덤까지…”지난 70년간 세계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복지 모델, 이상적인 삶을 꿈꿨던 유럽식 복지모델의 슬로건이다. 그러나 이런 복지모델이 서서히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

정부의 복지수당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다 보니 근로의욕 저하에 따른 도덕적 해이, 급증하는 세금으로 인한 경제활력 훼손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결국 국가 재정이 파탄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일명 복지병이라 일컫는 이 병은“실업도 괜찮은 직업”이라며 무임승차자(Free-rider)들을 대거 양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부 유럽국가들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자“요람에서 무덤까지로 표방되던 유럽의 사회 복지 모델이 조만간 관 속으로 들어갈 처지에 놓였다”고 표현했다.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대부분의 남유럽 국가들이 과도한 복지 수요로 인해 국가 재정이 고갈되고 노동 생산성이 낮아지고 실업자가 증가하는 등의 악순환에 빠져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이런 상황은 복지 선진국, 또는 복지 원조국이라 일컬던 스웨덴·영국·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유럽국가들은 지난 2년간 재정위기에 노출되면서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서 기존의 복지제도를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더이상 방치하면 과도한 복지재정으로 인해 자칫하면 국가 전체가 공명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는 위협 때문이다. 이들 국가들은 대부분 모두에게 똑같은 혜택을 주려던 기존의 '보편적 복지' 대신 대상과 규모를 까다롭게 선별하는 '선택적 복지' 체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유럽 최고의 '의료 복지국가'를 자랑했던 스페인은 지난해부터 기존의 무료 의료정책에 메스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과거 스페인은 1유로만 있으면 공짜로 진료 및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무상 의료정책을 채택해 의료 관광이 크게 발달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상당액을 수혜자인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스페인 정책 담당자들은“실업률이 20%를 돌파한 데다 세금을 내지 않는 노인 인구도 급증해 더 이상 이 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외에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강도 높은 재정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공무원 임금을 15%까지 삭감하고 정년을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해 연금 수혜시기를 늦추는 한편 매월 최대 2500유로(약 375만원)까지 지급하던 연금 액수도 줄였다. 신생아 1명에 2500유로씩 지급하던 출산장려금도 올해부터는 전면 폐지했다.

'복지의 대명사'로 불리던 덴마크도 사회안전망을 축소하고 취업을 유도하면서 재정위기를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덴마크는 해고된 노동자의 경우 급여의 80%까지 4년간 실업급여로 지급하는 제도를 유지해 왔으나 지난 6월부터는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2년으로 줄이고 재취업 의무도 대폭 강화했다. 매년 직장을 옮기는 노동자 비율이 30%에 달하는 등 직장을 쉽게 그만두는 관행을 뜯어 고치기 위한 방편이다. 클라우스 외르트 프레데릭센 재무장관은 “4년간의 실업급여라는 호사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며 “앞으로 사회안전망 투자를 더욱 줄일 것”이라고 뉴욕타임즈(NYT)를 통해 밝혔다.

'렌 마이드너(Rehn-Meidner Model) 모델로 '복지의 천국'으로 불리던 북구의 스웨덴도 체제개선에 나섰다. 렌 마이드너 모델은 70년대까지 정부의 총수요 관리정책에 대응해 강력한 노총을 통해 보편적 연대 임금, 적극적 노동전환 정책으로 완전고용과 물가안정, 재정 긴축을 동시에 달성하자는 방안이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노동자들의 장기 휴가, 휴직 및 조기 퇴직 등이 증가하면서 재정부담이 크게 늘어 스웨덴의 공공사회지출 비중은 GDP대비 30.2%로 OECD 국가중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로 인해 스웨덴 정부의 조세수입 비율은 1990년 38%에서 1995년 34.4%로 감소했고, 실업률은 9%대로 증가했으며, 경제는 활력이 떨어져 1991년부터 3년연속 마이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에 스웨덴 정부는 연금제도를 필요한 만큼에서 기여한 만큼 지급하는 제도로 전환하고 기초연금도 폐지했다. 또한 병상보상과 실업수당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 보상해 주지 않는 대상과 기간도 도입했다. 이러한 조치로 스웨덴은 최근 들어 노동생산성이 OECD 평균(2.0%)보다 높은 2.5%로 회복되고 경제성장률도 지난해 5.3%로 개선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이 밖에 디폴트(채무불이행)의 우려에 놓인 그리스가 최근 연금 지출 억제를 위해 지급 연령을 늦추는 방안을 의회에 제출했으며, 영국도 재정적자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2%로 크게 늘어난 데 위기의식을 느끼고 육아수당 등에 손을 대는 등 대대적인 복지정책 수술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속가능한 복지 제도가 유지되려면 '덜 내고 더 받는’복지를 '낸 만큼 받는’시스템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을 최근 유럽국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면서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며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하고 대신 무임승차를 줄여야 하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