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시대 핵심100인] <82>류자이 – 양적감사에서 질적감사 전환중인 중국의 감사원장
2011-11-03 15:08
(베이징=조용성 특파원) 류자이(劉家義) 중국심계서(우리나라의 감사원에 해당) 심계장은 1983년 심계서가 설립한 이후의 전 과정을 함께해온 심계업무의 달인이다.
1956년8월 충칭(重慶)시 카이(開)현에서 태어난 그는 쓰촨(四川)재정학교 재정학과를 졸업한 후 쓰촨성 재정청 감찰처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각 성의 재정감찰기구는 1983년 심계서가 설립된 이후 심계서의 조직으로 흡수된다. 쓰촨성 심계청에서 부처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1988년 청두(成都) 특파사무소로 이동해 청두시에서 감사업무를 본다. 이후 1992년 심계서 상업무역사(司)로 이동하며 베이징에 입성한다. 상업무역사에서 4년을 근무한 후 1996년 40세의 젊은 나이에 차관급인 부심계장에 오른다. 이후 부심계장으로서 12년을 근무하게 된다.
류자이는 1997년 심계서 심계장에 올라 10년여를 근무한 후 2008년 심계장을 류자이에게 넘겨준 리진화(李金華)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기도 한다. 류자이는 심계서에서 리진화와 16년동안 손발을 맞춘다. 그는 부심계장으로서 언론과의 접촉을 최대한 삼가하며 시종일관 막후에서 조용히 일처리를 했다.
심계서의 핵심업무는 국가재정에 대한 감사작업이다. 심계서는 매년 중앙정부 각 부처의 예산집행상황을 심사하는 역할을 한다. 심계서에는 25개의 각 부서에 심계파견사무소를 두고 있다. 그는 부심계장으로서 각 부에 대한 심계작업을 통할했으며 중요한 사건이 있을때는 그가 직접 팀을 꾸려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이 밖에도 국영 금융기관을 비롯해 공기업에 대한 감사작업도 심계서의 역할 중 하나다.
그는 1989년 청두에서 감사작업을 벌여 쓰촨성 전력공업국 소속 6곳의 전력관리종합 건물이 기준을 초과해 시설수선을 했음을 밝혀냈다. 공무원들이 거액의 국고를 유용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들은 모두 인사조치됐다. 그가 상업무역사 사장을 할때 여러해동안 곡물을 담당하던 국유기업을 감사해 중눙(中農)그룹이 3억위안의 정부보조금을 유용하고 화학비료를 독점해 이익을 남긴 사례를 적발해 내기도 했다.
심계서는 2000년 보다 효율적인 감사작업을 위해 각종 자료의 데이터구축에 나섰다. 이를 위해 심계서는 데이터시스템건설계획영도소조를 만들었고 류자이가 부조장에, 리진화가 조장을 맡았다. 에 올랐다. 영도소조에서 류자이는 가장 핵심적인 컴퓨터감사데이터취합처리기술과제 분임조장을 맡았었다. 사실상 데이터베이스작업을 그가 진두지휘한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류자이의 공로로 남겨졌다.
이어 원자바오(溫家寶) 내각이 들어선 2003년 심계서가 국무원 재정부를 감사할때는 류자이가 직접 팀을 꾸려 감사작업을 벌였다. 당시 감사결과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재정부 감사는 원자바오 총리가 원활하게 국무원을 장악할 수 있도록 했다. 2005년 심계서가 일부 국가급 개발구에 대한 감사를 진행할때도 전체를 지휘한 인물은 류자이였다.
류자이는 심계서 심계장에 올라선 후 중국의 감사제도를 양적인 감사에서 질적인 감사로 전환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예산을 배임행위없이 합법적으로 사용했는지도 중요하지만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는지에 대한 감사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그는 “예산지출의 효과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각부문, 각부서의 업무형태를 철저히 파악해 문제점의 근본원인을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류자이는 지난 6월 지방정부의 채무규모를 발표해 언론의 스폿라이트를 받기도 했다.지방정부 부채가 중국경제의 경착륙의 뇌관으로 지목되던 시기에 발표된 데이터였기 때문에 전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 보고에서 지방정부들의 채무가 2010년말 기준으로 10조7175억위안이며 지방정부의 재정능력 대비 채무비율이 52.25%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지방정부가 제공한 담보까지 포함하면 채무비율이 70.45%로 높아지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지방정부의 채무가 상환능력의 범위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최초로 공개한 중국 지방정부 부채규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