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몰락..北김정일 ‘핵무기 집착 강해질 것’

2011-10-21 07:07

리비아를 42년간 철권통치해온 무아마르 카다피가 20일 무참하게 살해되는 것을 지켜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리고 북한 핵문제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언뜻 긴 생각을 해야 할 것같지만 답은 간단해보인다.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가 걸은 길을 김정일 위원장이 답습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은 앞으로 더욱 핵무기에 집착할 것이고, 협상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넘기 힘든 벽을 만난 셈이다. 내주 열릴 2차 북미 대화에 이어 앞으로 북핵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내는 일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북한이 리비아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지난 3월 서방의 리비아 군사작전이 시작됐을 때 체감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3월22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란 바로 ‘안전담보’와 ‘관계개선’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상대를 얼려넘겨 무장해제를 성사시킨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방식이라는 것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구상에 강권과 전횡이 존재하는 한 자기 힘이 있어야 평화를 수호할 수 있다는 진리가 다시금 확증됐다”고 말했다.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지난 2003년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겠다며 핵무기 개발계획을 포기하겠다고 전격선언했다. 이에 따라 고농축우라늄(HEU)을 포함한 모든 핵계획을 포기하고 미국이 요구한 검증(사찰)방안을 수용했다.

미국은 카다피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며 북한을 향해 ‘선(先) 핵포기’를 골자로 한 ‘리비아 모델’을 수용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이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카다피 원수와 다정한 분위기에서 회담한 것이 대대적으로 보도돼 ‘친서방의 길’을 가는 리비아와 ‘고립의 길’을 택한 북한이 국제사회에 대조적으로 투영됐다.

북한과 리비아는 서방의 ‘적대시 정책’에 맞서 독자적인 생존을 추구하며 ‘핵무기 개발’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그리고 비슷한 방식으로 추진했었다.

2003년 리비아가 자발적으로 신고했던 핵시설에서 핵무기 원료로 전환되는 과정의 물질인 6불화우라늄(UF6)이 실린더에 담겨있는 것이 발견됐는데 그 출처가 북한으로 드러나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달 초 작성해 내부회람한 비공개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IAEA 보고서는 “두개의 작은 실린더에 담겨있는 6불화우라늄은 2000년 9월에, 하나의 큰 실린더에 담긴 6불화우라늄은 2001년 2월에 제조된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의 우라늄 전환 능력이 최소한 2001년 이전에 확보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2009년 4월 IAEA 사찰단을 추방한 뒤 농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공식 발표했고, 그해 9월3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농축활동 단계에 들어갔음을 확인했다.

결국 2003년을 기점으로 북한과 리비아는 서로 다른 길에 들어섰고, 현재 시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서방의 대규모 공습을 받은 카다피가 끝내 비참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한 장면을 지켜본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이제 ‘자위’를 명분으로 한 핵개발에 더욱 주력하게 될 것”이라면서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가 어떤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더라도 지난 수십년간 핵무기 개발에 전념해온 북한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더이상의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겠다’며 적은 양의 핵무기이지만 ‘핵보유국’으로 행세하려 할 가능성을 전문가들은 주시하고 있다.

길게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그리고 이번에 리비아 카다피의 처참한 최후를 목도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상대로 국제사회가 앞으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