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싱그룹 ‘창업5인방’과 리더 궈광창 회장
2011-10-03 11:11
(아주경제 홍우리 기자) 중국 최대의 민영기업인 상하이푸싱그룹(上海復星集團)은 의약품 부동산 철강 소매업을 4대 주력 업종으로 하고 있으며 이 밖에 금융 광산업에 대해서도 전략적 투자를 하고 있다. 1992년 창립이래 줄곧 중국 100대 기업으로 자리를 지켜왔고 2008년에는 중국 500대 기업 중 순이익 부문 82위, 납세액 부문 37위를 차지하는 등 막강한 사세를 과시해왔다.
최고의 우량 민영기업으로 꼽히는 푸싱은 탄생배경부터 남달랐다. 대부분의 민영기업들이 개인 업적이나 가족중심 경영에서 시작한 반면 푸싱은 궈광창(郭廣昌) 량신쥔(梁信軍) 왕췬빈(汪群斌) 판웨이(范偉) 탄젠(談劍), 이른바 ‘창업 5인방’의 손에서 태어났다.
이들 다섯은 상하이 푸단대학(復旦大學)의 동기들이다.
이들 5인방은 지난 1992년 푸싱의 전신인 광신(廣新)과학기술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궈광창은 해외 유학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운명의 힘에 이끌린 결과였을까? 비자 수속 과정이 늦어지는 도중에 궈광창은 준비해놓은 유학 경비를 회사 설립자금으로 내놓았다.
광신의 주 업무는 시장 조사와 컨설팅이었다. 궈광창은 재학시절 교내 시찰단을 이끌고 각지를 다녔던 경험을 토대로 발품을 팔아 뛰었고 많은 업체를 광신의 고객으로 만들었다. 광신은 덕분에 창립 10개월만에 100만위안의 수익을 올렸다.
이후 컨설팅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수익이 쪼그라들자 궈광창은 ‘알람 귀저기’와 같은 자체 개발한 제품을 출시하지만 참패한다.
이즈음 궈광창은 상하이 외곽지역에서 다른 부동산 업체가 내놓은 매물의 매매가 순탄치 않음을 알고 자신이 직접 부동산 분양사업에 뛰어든다.
당시 상하이에서는 건설 현장 부근에 매매 전단지를 내고 건물 한 채를 통째로 기업 등 큰 손 고객에게 파는 것이 일반적인 분양 방법이었다. 궈광창은 그러나 곧장 신문 잡지 등에 광고를 내고 우편으로 홍보물을 발송했다. 그리고 한 칸 한 칸을 단위로 매매를 했다. 지금으로선 평범하기 그지 없는 방법이지만 당시로서는 ‘참신했던’홍보 방식으로 1000만위안을 거머쥐었다.
1993년, 시장 감각을 익힌 5인방은 다시 의약품 업계에 눈을 돌렸다. 이들은 모교 생명과학원의 공동연구를 진행했고 새로운 간염진단 시약 개발에 성공, 95년 1억위안을 벌어들였다.
그 사이 1994년, 사회초년생 5명이 만든 소규모 컨설팅 업체 광신은 푸싱그룹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푸싱은 사업 영역을 확대해갔고 1998년, 그룹 산하의 푸싱스예(復星實業)가 상장에 성공한 뒤에는 발전에 가속도가 붙었다. 2007년에는 푸싱궈지(國際)가 홍콩 증시에 상장됐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에는 4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자영업자가 출현한 개혁 초기가 첫 번째 기회였고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지식인들의 샤하이(下海 관직대신 창업을 선택함) 열풍이 불던 때가 두 번째였죠. 여기에 기본적인 조건만 갖추면 정부로부터 사업체 설립 허가를 얻을 수 있도록 자본시장 제도가 바뀌면서 민영기업들은 또 한차례 기회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1998년, 국영기업들이 비경쟁성 영역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 또한 중요합니다. 오늘의 푸싱은 신화가 아니라 1992년 이후의 세번의 기회를 포착하여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입니다. 푸싱은 업계의 선구자에서 리더를 향해 매진합니다.”궈광창이 생각하는 푸싱의 성공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