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또 오나”..대기업, 자금 끌어모은다

2011-09-15 07:37

대기업들이 전방위로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은행 대출,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 등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는 모습이다. 갈수록 악화되는 유럽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비해 자금을 미리 확보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반면 중소기업은 돈 구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어 ‘자금 양극화’가 날로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 “자금 쓸어담기, 금융위기 때와 비슷”15일 한국은행 및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기업들은 올해 들어 은행 대출 및 직접금융시장에서의 조달을 통해 모두 6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한해 자금 조달 규모인 64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2009년 자금 조달액 49조원은 훨씬 뛰어넘는 규모다.

대기업 대출잔액은 지난해 말보다 18조원 넘게 늘어 106조원에 육박한다. 작년 한해 증가액 12조원보다 50%나 많은 금액을 8개월 새 확보한 것. 2000년대 들어 단기간에 대기업 대출이 이렇듯 급증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당시 대기업들은 2007년 말 50조원이던 대출잔액을 금융위기 직전인 다음해 8월 말 71조원까지 늘려 8개월 새 21조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대기업들은 회사채 시장에서도 자금을 쓸어담고 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대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총액은 36조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무려 11조원이 늘었다. 이는 작년 한해 회사채 발행액(45조원)의 80%에 육박하는 수치다.

올해 1~7월 대기업의 유상증자는 4조5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6천억원)의 두배를 훨씬 넘는다. 회사채 발행, 증자, 기업공개를 망라한 대기업의 직접금융 조달은 올해 1~7월 41조원을 넘어서 작년 1~7월보다 43% 급증했다.

◇ “금융위기 다시 올지 모른다”‥불안감 확산대기업의 자금 매집 배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불안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하반기 경제가 어려워지고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돼 자금조달이 힘들어지겠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금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부도 위기까지 불거지는 등 유럽의 재정위기가 수그러질 줄 모르는데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둔화가 본격화되는 등 대외 환경은 악화일로를 겪고 있다.

이는 국내 기업의 체감경기에도 바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은이 조사한 8월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월보다 11포인트 하락했다. 11포인트 하락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던 2008년 11월 13포인트 하락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이다.

시중금리 상승에 대비해 자금 확보에 나서는 대기업들도 적지 않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 5.52%였던 신규 기업대출 금리는 올해 7월 말 5.98%로 6% 턱밑까지 이르렀다. 같은 기간 3년 만기 회사채(AA-) 금리도 4.17%에서 4.48%로 뛰어올랐다.

대기업연구소 재벌닷컴의 정선섭 대표는 “은행들이 대출 억제에 나서면서 시중금리가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도 기업들의 자금 매집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 중소기업은 자금난 오히려 가중문제는 대기업에 비해 자금 조달능력이 떨
어지는 중소기업의 자금난이다.

8월 말 현재 중소기업의 대출잔액은 443조원으로 대기업의 4배에 달할 정도로 자금 수요가 많다. 하지만 올해 1~8월 중소기업이 조달한 자금은 15조원 가량으로 대기업 조달자금(60조원)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대기업보다 훨씬 열악한 직접금융시장에서의 자금 조달능력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1~7월 직접금융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조달한 자금은 1조8천여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 줄었다. 대기업의 자금 조달이 43% 급증한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특히 중소기업의 유상증자는 올해 들어 6천억원에도 미치지 못해 지난해 1~7월 9천400억원에 비해 급감했다. 같은 기간 대기업의 유상증자는 세배 가까이로 늘었다.

최근 수년간 직접금융시장에서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비중은 7~10%가량에 달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고작 4%에 그치고 있다.

올해 들어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대기업 쏠림현상’이 생겨나, 신용등급 등이 낮은 중소기업은 오히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김기명 애널리스트는 “대기업도 국고채 금리에 비해 1%포인트 가까운 가산금리를 주고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은 이보다 훨씬 높은 가산금리를 얹어줘도 회사채를 발행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백흥기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으로서도 자금사정 악화에 대비해 자금조달을 하고 싶지만 못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의 회사채 발행 활성화 등을 통해 대기업과의 자금 양극화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