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국제공조, 세계경제 최악 치닫나

2011-08-07 14:49
美 신용등급 강등·유럽 재정위기 여파 국제공조 약화<br/>美 더블딥 우려 'QE3' 가능성에 '환율전쟁' 새 국면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5일(현지시간) '트리플A(AAA)'인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강등했다. 부채협상은 마무리됐지만, 재정적자 감축 능력에 대한 불신이 등급 강등 결정의 배경이 됐다.

미국 경제의 더블딥(이중침체)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경기사이클을 판단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일원인 마크 펠드스타인 미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50%로 판단했다.

그리스 사태에서 불거진 유럽의 재정위기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심지어 프랑스까지 위협하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국가가 위기의 전면으로 부상하면서 약화되고 있는 국제공조가 각국 중앙은행들의 탈동조화를 부추기고, 환율전쟁을 비롯한 불확실성을 확대해 세계 경제를 최악의 상황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 3년간 달러인덱스 추이(출처 CNBC)

◇위기 극복 국제 공조 파열음
시장에서는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공조 기조가 흔들리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2008년 10월 서방 6개국 중앙은행은 함께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막대한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했다. 중국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에 동참하면서 세계 경제를 떠받쳤다.

하지만 주요국 정부는 이제 지출을 한푼이라도 더 줄여야 할 처지고, 대규모 부양자금으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은 중앙은행이 쓸 수 있는 통화정책의 폭을 제한하고 있다. 로이터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이미 제로(0) 수준까지 떨어져 가까운 미래에는 주요국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낮출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내년 미국과 프랑스 대선, 이듬해에는 독일의 총선거가 예정된 데 따른 정권 교체 가능성도 국제 공조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신흥국 진영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 지원에 반발, IMF의 행동반경을 제약하고 있다.

◇美 'QE3' 가능성↑…'환율전쟁' 새 국면
유럽 투자은행인 색소뱅크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틴 야콥센은 재정 악화로 주요국들이 위기 타개의 주도권을 중앙은행에 넘길 공산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로 시장에서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준이 추가 부양에 나설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앞서 연준이 두 차례에 걸쳐 양적완화를 시행했을 때 뉴욕증시는 각각 20% 넘게 올랐고,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특히 연준의 3차 양적완화(QE3)로 달러화 약세 기조가 강화되면 국제사회의 결속력이 더 약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달러화 약세는 신흥국 통화의 강세를 부추겨 환율전쟁과 무역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전 세계는 달러화 약세로 인한 자국 통화 강세를 반전시켜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치열한 환율전쟁을 벌였다. 지난해 9월 주요국 당국자 가운데 처음으로 '환율전쟁'을 공식화한 귀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지난달 환율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도 연준의 QE3 시행 가능성이 커지면서 환율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고 지적했다. 갈등의 수위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환율전쟁 확전…각국 시장개입 수위 높여
최근 달러·유로화가 추락하자 지난 3개월간 스위스프랑·뉴질랜드달러·엔·헤알화(브라질) 가치는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았다. 헤알화의 경우 2008년 말 이후 달러화에 대해 35% 가까이 올랐다.

이런 가운데 각국 정부는 최근 환율 방어를 위한 개입 수위를 높이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지난 2일 160억 달러 규모의 감세조치를 취하고, 헤알화값 급등으로 고전하는 제조업 보호를 위해 무역장벽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남미 지역 재무장관들은 이달 환율 방어를 위한 대책도 논의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뉴질랜드 정부의 시장 개입도 머지않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지난 1일 뉴질랜드달러·달러 환율은 88.43센트로 1985년 환율통제 해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수주간 더 환율이 80센트 후반대를 유지하면 당국이 행동에 나설 것으로 점치고 있다.

수 트린 로열뱅크오브캐나다 외환투자전략가는 캐나다와 호주 중앙은행 등은 이미 기준금리 인상을 자제하는 등 긴축 속도를 늦추는 방식으로 환율 방어에 나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만도 테탕코 필리핀 중앙은행 총재도 최근 3년래 최고 수준으로 오른 페소화값의 변동성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