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가 이철수 "첫 데뷔했던 관훈갤러리서 30주년 기념전합니다"

2011-06-16 21:16
'새는 온몸으로 난다'展 22일~7월 12일까지

백장법문.


(아주경제 박현주기자)  "외로웠다"는 그는 30년이 지난 요즘 6만명의 팬을 거느리고 있다. 

70년대후반 군대제대후 독학으로 시작했다. 미술대학을 나오지도 않았다.   '멕시코 혁명기 미술', '중국 신흥판화'등 미술에 관한 진보적 글을 읽고 "참여적인 미술은 없나" 고민했다. "판화를 보며 데모하기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판화작업이 30년이 흘렀다.
 

목판화가 이철수(57). 간결한 그림, 마음줄을 울리는 한줄 글이 담긴 '선화같은 그림'으로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는 그를 15일 서울 인사동 한 식당에서 만났다.

1981년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던 관훈미술관(현 관훈갤러리)에서 마치 연어가 고향으로 회귀하듯 다시 30주년 기념전을 마련한다. 개인전으로 2005년이후 6년만이라고 했다.

늘 백화점,서점에서 아트상품으로 만나던 그는 가벼운 '이철수'가 아니었다. 선문답 하는 스님처럼 세상일에 무심한듯 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은 새삼스러웠다.

최근까지 민예총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침체기에 빠진 민예총을 재건하고 회복시키기위해 바빴다고 했다.

또 그가 80년대 작업했던 판화는 지금의 판화와는 달리  걸개그림의 거친 칼맛을 자랑했다.


새벽이 온다 북을 쳐라!. 1988


"86년도인가, 오윤이형이 잘 새겼다고 했어요. 오윤형과 가깝게 지내기 시작하면서 적극적으로 목판작업을 하게됐지요."

초기 돈도 없고 정보도 없던 그는 베니어판이나 고무로 판화작업을 했다. 데뷔전을 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고무판을 목판으로 바꿨고 옆에는 오윤이 있었다. (80년 작품들은 언뜻 오윤 판화 같기도 하다. )

1980년대 이철수는 민중미술운동사에 오윤에 이어 획을 그은 판화작가다. '반 예술'이라는 책을 번역했고, 80년대 출간한 '응달에 피는 꽃'은 당시 나오자마다 판금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이 책을 인터넷에서 구했다고 했다.

당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했던 그는 90년대 들어오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불가의 선에 심취하면서 지금의 단아해지는 판화로 변신한다.

민중미술에서 변한 선판화는 당시 평론가들에게 부정적이었다.

1993년 2월 학고재화랑고에서 가진 그의 개인전때 이태호(명지대)교수는 선화로 변화한 작가론을 쓰면서 상당히 부정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이교수는 당시 "예전의 이철수와는 너무 달라서 얼척없기도 하고 할말을 잊은 채 걱정스럽기만 하였다" 며 " 한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 팍팍한 현실을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이 시대의 한 작가 유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시서문을 썼다.

예쁘고 다감하고 소쇄하고 신산한 느낌으로 가슴을 스치는 '판화 달력작가'로 알려진 작가와는 다른 놀라운 사실이다.

작가는 90년대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이후 판화달력부터 시작해 대중들의 마음속으로 파고 들었다. 또 2002년 10월 가을 편지를 드립니다로 시작한 온라인 공간의 '나뭇잎 편지'는 현재 접속하는 회원수가 6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난 30년동안 제작한 판화작품만 최소한 2천여점이 넘고, 벽화와 작은 그림 엽서등을 합하면 5천여점 넘게 작품을 제작했다. 30년간 이틀에 한점씩 작품을 만들어 온셈이다.

"저는 복받은 사람인 것 같아요. 30년을 한눈 안팔고 걸어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전시활동을 자주하지 않는 그는 판화산문집 4권에 엽서산문집 6권 등 주로 책으로 자신의 그림을 전하고 있다.

80년대 후반 충북 제천으로 내려가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고, 판화를 새기고, 책을 읽으면서 지낸다"는 그는 "목판에 나무와 대화하며, 마음을 새겼다"고 했다.

그에게 판화란 무엇일까.

“그림에 이야기를 담는 거죠. 그 이야기 내용이라는 건 거칠게 요약하면 ‘착하게 사는 게 좋을 걸?’하는 거에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과 동시에 저도 이제 함부로 살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넌 말해놓고 잘 사냐?라고 질문하듯 스스로 족쇄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판화는 저를 지켜주는 존재입니다.”


22일부터 시작되는 목판화 30주년전의 화제(畵題)는 ‘새는 온몸으로 난다'다. 1981년 첫 개인전 이후 민중미술에 몰두했던 시기의 작업과 충북 제천으로 이주해 농사를 지으며 자기 성찰과 생명에 대한 관심사를 담았던 1990년대 작업, 2005년대 이후 최근까지 작업 등 113점을 선보인다.

거친 열정이 넘치는 시기를 거쳐 단아한 촌철살인의 화제들로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이철수의 총체적인 작업세계를 볼 수 있는 전시다. 

목판화가 이철수.
"이번 전시는 모처럼 전시준비를 해서인지 그림이 달라지더군요. 정밀한 칼집이 있어서 사진같은 대형 독수리 판화를 그려냈어요. 온몸, 온 존재의 실체에 대한 화두입니다. 독수리에 육박하는 압도하는 힘을 보여주고 싶어서 안하던 짓을 좀 했죠. 제 작업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싶어요. "

가로 1m25cm, 세로 93cm 크기, 날카로운 눈빛이 형형한 '독수리 판화' 작품은 절차탁마한 내공이 뿜어나오는듯 하다. 

전시는 관훈갤러리를 시작으로 주문진과 전주 등에서 이어지며 29일에는 작가와의 대화도 마련된다.

전시와 함께 목판화 인생 30년을 담아 선집 ‘나무에 새긴 마음’(컬처북스)도 펴냈다.
 책 첫장에는 "곁에서 크고 작고 귀찮고 험한 일 다 감당해 주는 아내 이여경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며 "그 힘을 빌지 않고는 이 나마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 결혼도 30주년이다.  관훈갤러리 전시는 7월12일까지. (02)733-6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