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헌규의 중국이야기 14-8> 1억원을 가진 가난뱅이들
2011-06-08 08:45
14 중국사회의 신성장 동력, 바링허우(1980년이후 출생자)
경제가 짧은 시간에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 중국의 80년대생 바링허우들은 개혁개방이라는 사회 격변기에 태어나고 성장한 탓에 성격적으로 매우 이중적이고 다면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특히 중산층 대열에 편입하지 못한 바링허우들은 고도성장과정에서 왜곡되고 굴절된 중국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본보기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음악이든 인터넷 게임이든 무엇엔가 도취해야 직성이 풀리는 세대들이다.
바링허우 세대는 중국사회에서 오토바이 폭주족의 원조들이다. 격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탐닉하며 젊음을 발산한다. 그들은 밤을 세워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고, 이어폰으로 시끄러운 서양음악을 듣다가 카페와 소파에서 잠을 깬다.
상당수 바링허우 세대들은 정치 같은 일에 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전국인민대표회의와 전국정치협상회의 등 국회격인 기구가 뭐냐고 물으면 고개를 젖는 바링허우들이 적지 않다. 관영 신화통신과 CCTV 등 관변 매체들이 국가 지도자들의 동정을 귀따갑게 전해주고 있지만 바링허우들에게 정치는 그다지 흥미있는 일이 아니다.
“집안에서 부모님과 나라 정치와 특정 지도자의 인물 됨됨이를 놓고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요.” 산시성 출신의 36세 노총각 바링허우는 어렸을때 부터 집안 어른들로 부터 “정치에 관해선 그냥 듣고 흘러버려야지 자기 견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고 소개했다.
그는 바링허우의 사회적 경험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얘기를 계속했다.
“중국 바링허우들은 끔찍한 문화혁명의 어두운 시대를 가까스로 모면하고 물질적으로 이전보다 풍요한 생활을 누렸어요. 하지만 우리 세대는 태어나자 마자 체제 변화의 거대한 격랑에 휩쓸려야했지요.”
개혁개방은 전 사회적으로 경쟁을 격화시켰다. 분배와 공평 보다는 생산성과 인센티브, 성장과 같은 가치를 강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계층간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국유자산 민영화 등 체제개혁과정에서 엄청난 부가 약삭빠른 관원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사회는 혁명이전처럼 소수의 가진자와 절대다수의 못가진자로 분화됐다.
바링허우들은 비교적 풍요한 유년을 보내고 운좋게 대학도 졸업했지만 막상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에는 험란한 가시밭길 인생과 맞딱드려야했다. 이 세대들 부터 대학문호가 넓어진 만큼 취업경쟁도 덩달아 치열해지면서 고학력 실업자 시대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항상 고용불안에 떨고 취업을 해도 심한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려야했다.
그들은 또한 부동산 광풍때문에 중국에서 내집 마련하는데 가장 어려움을 겪는 세대가 됐다. 어쩌다 아파트와 자동차를 가졌어도 할부 빚 투성이 이다 보니 여전히 금전의 노예일 뿐이다. 주택대출과 자동차 할부금에 치인 바링허우들을 일컬어 '100만위안(약 1억6500만원)짜리 가난뱅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때문에 바링허우들중에는 월급봉투가 급여일 당일에 텅텅 비어버리고 마는 '웨광주(月光族)'가 늘어가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우리 바링허우들은 미래에 담보 잡힌 인생들'이라는 자조적인 얘기가 떠돌고 있다. 바링허우들이 자랑스럽게 ’조국찬가’를 열창하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에 대해 냉소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