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한번 더 도약해야 할 시기

2011-05-31 17:18

(아주경제 임재천 기자) 지주회사 체제가 출범한지 꼬박 10년이 지났다.

많은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를 선택했고, 2005년 25개에 불과했던 지주회사가 지난해는 96개로 증가했다. 공정위는 최근 "지주회사 체제가 국내 대기업집단 기업구조의 선진화를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당초 우려와 달리 지주회사 체제가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장수단으로 악용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국내 지주회사는 IMF 이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기업 개혁을 강조하면서 시작됐다.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지만 기업들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주식 시장에서 외국인 영향력이 커지면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으로 지주회사 시스템이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투명성 제고도 기업들의 구미를 당겼다. 특히 기업들은 지주회사를 통해 기업들은 신성장 동력을 찾거나 비효율적인 사업을 정리하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 재설정에 큰 기대를 걸었다.


△ 10년 동안 가치 창출했나?

국내 지주회사는 그동안 신사업과 자회사 전략 수립에 깊이 관여했다. 지주회사를 설립하면서부터 계열사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가 가능해졌고 신사업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도입 10년째를 맞아 재계의 주목을 한꺼번에 받는 곳은 바로 삼성그룹이다. 삼성은 지주회사 전환이 향후 경영권 안정에 효과적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때문에 언제든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태세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곧바로는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내년 4월까지 5%로 축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LG, GS, 두산, CJ그룹도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LG그룹은 지난 2년간 다양한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더 이상의 합병이나 매각이 필요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LG전자 등의 본질적인 경쟁력 향상을 비롯해 비상장사들이 상장을 통해 시장에서 본격적인 재평가를 받아야 할 시점이다.

GS그룹 역시 GS리테일의 상장과 신사업 진출로 GS칼텍스에 편중된 그룹 의존도를 낮춰 사업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CJ그룹은 CJ E&M 설립으로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에 대한 사업 구조조정을 마쳤지만 턴어라운드에 대한 의구심을 아직 떨구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LG그룹처럼 일찍부터 지주회사 체제를 선택한 기업들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며 "획일적인 지주회사 체제보다는 과거의 순환출자, 공익재단을 활용한 유럽식 지주회사 체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한국형 지주회사의 과제

현재 국내 지주회사들은 다양한 사업을 관장하기 위해 경영이념이나 핵심 가치 전파에 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과 관련하여 지주회사만의 차별적인 가치 만들기에 '올인'하고 있다.

하지만 지주회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한계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새로운 사업을 펼치는 것은 잘했다. 정부에서 기업 설립을 적극 장려했기 때문에 1% 가능성만 있어도 바로 진입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 철수를 못한다는 점이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산업이 쇠퇴하거나 사양길에 들어선 사업을 스스로 정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신사업보다는 한계에 다다른 사업을 정리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증권업계 관계자 역시 "지주회사 체제는 그룹 차원에서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리스크 관리 방법이나 계열사 통제 방안에 대한 시스템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당초 우려와 달리 지주회사 체제가 지배력 확장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투명한 소유구조 확립을 통해 자·손자회사 지분율, 계열사간 수평적 출자금지 등 핵심제도는 계속 유지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