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중동판 마셜플랜’..아랍과 연대 재천명

2011-05-20 06:58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9일(워싱턴 시간) 낮 발표한 새로운 중동정책의 핵심은 중동, 북아프리카에 대한 경제적 개혁과 지원을 통해 `중동의 민주화 바람‘을 추동하고 안정화시키겠다는 것이 다.

2차 세계대전이후 폐허의 유럽을 재건하고, 공산주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대규모 경제적 지원을 추진했던 `마셜 플랜‘의 중동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민주화 혁명결과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 체제를 구축하는 이집트, 튀니지에 민주화 연착륙를 위한 `경제적 생명줄‘을 공급하는 조치임과 동시에 여전히 민주화 투쟁중인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의 국가 민중들을 향한 민주화 인센티브로 영향을 미칠 전망
이다.

◇모호성 비판 의식..첫 중동정책 청사진 발표=국무부 청사에서 45분동안 이뤄진 오바마의 이날 연설은 지난 1월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 축출로 두껑이 열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하야에 이어 수개월동안 지속돼 온 `중동 민주화‘ 사태 촉발 이후 첫 연설이다.

중동 민주화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미 행정부의 청사진이 포괄적으로 담긴 비전이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사살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도 이 시점에서 중동정책 연설이 나온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운동과 빈 라덴의 죽음으로 미국 외교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동안 중동 사태가 미국의 예상을 넘어설 정도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변화냐, 현상유지냐‘를 둘러싼 전략적 판단에서 모호한 입장을 보여 국내외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는 점에서 며칠전부터 예고된 이 연설은 주목을 받았다.

◇독재 축출 이집트.튀니지 경제재건 지원=오바마는 이 연설에 중동.북아프리카 민주화 국가들에 수십억달러의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구상을 담았다. 경제지원을 바탕으로 민주화를 견인하고 안정화시킨다는게 골자이다.

오바마는 “역내 개혁과 민주화 이행을 촉진하는 것이 미국 외교의 최우선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집트에는 20억달러가 넘는 지원이 이뤄진다. △10억달러의 이집트 채무 탕감 △해외민간투자공사(OPIC)를 통한 10억달러 대출지원 △투자증진을 위한 미-이집트 기업펀드 조성 등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도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을 통한 재정지원, 대출을 유도할 방침이며, 공산주의 붕괴후 동유럽 재건을 위해 활약했던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이 이집트에도 역할을 하도록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는 독재자를 축출해 민주화의 봄을 맞았지만, 경제적 불안정을 극복해 안정적인 경제 재건의 길을 밟지 않고는, 정치적 민주화 개혁도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이집트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1%에 불과하며, 민주화 이후 오히려 외국 투자자본이 이탈하는 등 외부의 지원이 없으면 경제적 공황이 도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미국이 지난 25년동안 4억달러를 지원한 튀니지에도 다각적인 경제지원을 한다는 방침이다.

이집트, 튀니지의 민주화 개혁 성공여부는 이 나라들이 금융시장이나 해외 민간자본의 매력적인 투자처로 얼마나 탈바꿈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미 행정부는 보고 있다.

◇시리아.바레인.예멘 개혁 압박=이와 함께 오바마 대통령은 이처럼 민주화를 달성한 국가에는 경제적 지원이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겠지만, 민주화 시위를 폭압하는 국가에는 ’채찍‘을 가하겠다는 ’투-트랙‘ 메시지를 내놓았다.

민주화를 유혈진압한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겨냥해 직접 제재 방침을 천명한게 대표적이다. 그는 “시위대 폭력적 진압을 더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날 미국은 아사드 대통령과 최측근 정부 고위직인사 6명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아사드가 독재자지만 이란의 영향력을 제어하고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아랍권의 평화협상 중재자 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속에 제재 입장 표명을 자제했지만, 계속된 유혈진압을 보며 아사드와 절연하는 길을 밟기로 선회한 것이다.

오바마는 “알-아사드는 역사적인 개혁을 이끌지 않을 경우 역사에서 퇴장해야 한다”고 말했고 민주화 열풍에 휘말린 동맹국 바레인에도 대화를 촉구했다. 예멘 정부에도 권력이양을 요구하며 압박을 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미국은 현상유지를 꾀하는 중동의 독재자가 아니라 민주화, 변화를 원하는 중동의 민중들과 함께 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1967년 중동전쟁前 국경선이 평화협상 출발”=이번 연설은 지난 2009년 6월 무슬림에 화해 선언을 했던 이집트 카이로 연설에 이어, 다시 한번 아랍 세계를 향한 연대 의지를 부각시킨 연설로 풀이된다.

이는 교착상태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중동평화협상에 대한 언급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오바마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 국경선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협상의 출발점으로 공식인정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을 통해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지구를 점령했었다. 1967년 국경선 회복은 팔레스타인의 줄기찬 요구사항이었다.

`1967년 전쟁 이전 국경으로 돌아가자‘는 오바마의 입장은 미 정책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스라의 반발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오바마는 오는 9월 유엔총회에서 독자적인 국가로 국제적 승인을 얻으려는 팔레스타인의 목표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나름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