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파키스탄 관계 악화 전망 대두

2011-05-03 13:06
빈 라덴 제거 작전 사전 고지 안해<br/>미 "파 정부 은신처 알았을 것" 의심

(아주경제=워싱턴 송지영 특파원)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한 미국과 파키스탄의 향후 관계에 먹구름이 일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대저택에 은신해 있던 빈 라덴을 지난 1일 미군이 사살한 데 대해 남부캘리포니아대 정치학과의 리차드 데크메지안 교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수행한 이번 작전을 놓고 파키스탄은 매우 심기가 불편했을 것"라며 "사전에 알리지도 않고 파키스탄 영토에서 미국이 군사 작전을 감행했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빈 라덴 살해 직후 가진 발표에서 "이번 작전은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 하에 이루어졌다"고 밝혔지만, 이번 작전과 관련한 파키스탄의 역할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작전 수행 이후 "빈 라덴이 파키스탄 중심부 대저택에 은신해 온 것을 보면 알게 모르게 파키스탄 정부가 도움을 주지 않았겠냐"며 백악관 발표와 상반된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정황 속에서 미국이 빈 라덴 제거 작전을 사전에 파키스탄 정부에 알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상당 기간 파키스탄은 미군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빈 라덴 제거 작전을 도왔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이 은밀히 테러 집단을 돕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빠르게 악화됐다.

급기야 지난 2월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과의 고위급 외교 채널을 단절했다. 이번 작전을 수행키 위한 미국의 사전 준비였다는 분석이다.

빈 라덴이 숨어 있던 대저택은 무려 12피트에서 18피트 높이의 담이 둘러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철조망 시설도 있었다. 미국 정부는 이 저택에 빈 라덴이 은신해 있다는 정보를 지난해 확인하고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저택을 만들어 소탕작전 훈련을 해왔다. 그런 만큼 파키스탄이 고의로 빈 라덴 은신을 도왔다고 단정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아프가니스탄 국경 산악 지대에 빈 라덴이 숨어있을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호화 생활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주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파키스탄 정부가 적극적으로 빈 라덴을 돕지는 않았더라도, 적어도 그의 거처는 알고 있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며 파키스탄은 지원 대가로 2010년에만 10억 달러를 미국으로부터 받았지만, 그 밀월 관계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반대했었다.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부터다. 자신들의 '뒷 마당'으로 여기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전쟁을 하고, 더 나아가 친미정권이 들어선다는 데 파키스탄은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한 결정적인 문제는 파키스탄이 핵 보유국이라는 데 있다.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서 살해된 데 따른 알카에다의 파키스탄에 대한 보복 테러도 전망되고 있다. 최악의 경우 파키스탄 정부가 반미로 돌아서면 미국 정부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만에 하나 파키스탄 정부가 친 알카에다로 돌아선다면 제 3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파키스탄에서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최근 벌어진 중동 민주화 붐에서 파악되듯이, 이슬람세계에서의 정치 민주화는 알카에다나 빈 라덴 같은 과격 테러리스트의 인기를 계속 하락시켰다. 빈 라덴 제거가 파키스탄과 미국과의 관계에 지나가는 소나기 같은 효과 외에는 장기적인 중대한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빈 라덴의 인기는 2003년부터 하락을 지속해, 요르단 43%, 팔레스타인 38%, 인도네시아 33%, 레바논 18%, 터키 12%씩 각각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