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2011-03-30 17:42

박 성 택 예술의전당 사무처장

지난 3월 중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는 ‘야끼니꾸 드래곤’이라는 연극이 공연됐다. 이 공연은 예술의전당과 일본 신국립극장이 공동으로 제작한 연극으로 재일교포 정의신씨가 연출하고 한일 양국의 배우들이 공동 출연했다. 이 연극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 말. 지역은 일본 간사이 지방 오사카의 재일교포 마을의 곱창구이집이다. 그 음식점 이름은 ‘야끼니꾸 드래곤’ - 우리말로 하자면 ‘용길이네 곱창집’이 연극의 제목과 동일하다.

이곳은 소나 돼지의 부속물인 곱창을 구워 팔던 식당. 그런데 곱창은 과거 일본에서는 천대받던 음식이었다. 곱창을 먹는 것을 ‘호루몬’이라고 하여 비하하기도 했었다. 일본 땅에서 곱창을 구워 팔았던 사람은 김용길. 우리 민족에게는 아픔의 공간이었던 일본 땅에서 그는 평범치 않았던 신분이었다. 그는 태평양 전쟁 때 한쪽 팔을 잃었다. 한국전쟁 때는 부인마저 잃었다. 김용길은 우리역사의 아픔과 질곡을 온몸에 간직한 캐릭터였다. 연출가 정의신은 김용길, 부인, 딸, 사위와 같이 살면서 그 시대 재일교포라면 누구나 겪었을만한 인생의 역경이 묻어나는 시대적 아픔들을 무대 위에 쏟아 놓았다.

김용길과 그의 주변 인물들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는 예상대로 단순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아픔이자 한일 양국 역사의 아픔을 대변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고통스러운 기억을 현시점에 다시 꺼낸다는 것이 한일 양국의 역린을 건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이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극의 흐름은 매끄러웠다. 그 까닭은 한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재일교포 정의신의 자전적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로인해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연신 터뜨리는 우스꽝스러우리만큼 희화한 수많은 단어들에도 불구하고 일부 관객들은 연신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이러한 연극내용 외에도 눈여겨 볼만한 것이 또 있었다. 극장 로비의 모금함이다. 대지진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일본국민을 돕기 위해 설치한 것이었다. 예술의전당은 1회 공연 티켓판매 수익금과 관객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 이번 사례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치유하는데 예술이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번 작품은 눈물로, 때로는 웃음으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여 상처를 치유해준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이번 연극과 비슷한 시기인 1960년대에도 있었다. 세계는 동서 양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던 냉전시대였다. 정치적 이념의 차이로 인해 서로 간에 갈등은 극도로 고조돼 있었으며, 정치·경제·사회·과학 등 모든 분야의 교류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예술분야는 조금 달랐다. 지금처럼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양진영 간의 교류는 간간히 이루어지곤 했었다. 살롱예술로 회자됐던 이 시대 예술은 서방과 공산진영 간 교류 시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정치·경제·민족 등의 이념과 체제 비판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해야 했다는 시대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살롱예술은 풍경, 정물, 인간 내면의 감정 등 제한된 분야에서만 구상과 비구상의 형태를 빌어 교두보 역할을 자처했었다.

이 시대의 예술로 말미암아 대립각을 세웠던 양진영은 새로운 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교류들은 적이라고 여기던 상대 진영의 사람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감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이념이나 체제의 가치보다는 인간으로서의 본질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었다. 예술사를 살펴보면 예술이 신권과 정치권력의 시녀를 자처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냉전시대 예술의 큰 사조는 체제 정당성과 집단 이익보다는 사람과 사람간의 교류와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소통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예술은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는 동시에 집단 간의 갈등을 해소시켜주었다. 예술은 아픔에서 분출되는 노여움을 용서로 바꿔주는 마법과과 같은 힘을 지녔다. 정치·경제·군사적인 논리로 해결이 어려운 문제나 어려움도 해결해주었다. 예술은 사람에게 감동을 줌으로써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