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슬프게한 일그러진 영웅들

2011-03-28 08:56

양 규 현 부국장겸 정치사회부장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왔던 두 남자가 지난주 비오는 가을 신작로에 낙엽이 되어 내동댕이쳐지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정운찬 전 총리와 가수 김건모씨였다. 이들은 한때 국민이 신뢰하는 인물로, 국민가수로 불렸던 인물이었다. 정 총리는 서울대학교 총장시절 우리사회를 바로잡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면서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비록 총리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약간 빛바랜 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인물로 꼽혀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그가 2007년 학력위조 파문 등으로 구속기소 돼 유죄판결을 받았던 신정아(39)씨의 자전 에세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배신감을 안겨 줬다. 신 씨는 자전에세이 ‘4001’을 통해 정 전 국무총리가 ‘부도덕한 짓’을 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총리는 서울대 총장 시절 자신에게 교수직과 미술관장직을 제의한 뒤 밤늦게 자주 불러냈다고 말했다. 당사자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박사학위 위조 사건이 터진 직후 정 전 총리는 검찰에서 서울대 교수직을 제의한 적도, 미술관장직을 제의한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 신 씨는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그 얘기를 듣고 “실소가 나왔다”고 책에 썼다.
이를 놓고 일부에서는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신 씨의 자전에세이 내용의 진실 여부를 떠나 그런 분류의 인사들과 함께 어울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에게 실망을 준 것이다.
4년 후 다시 돌아온 ‘신 씨 파문’은 공인과 공직자의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가수 김 씨도 우리에게 실망감을 줬다. 그의 순간 판단 잘못으로 인해 20년 가수 활동으로 쌓아온 명성에 흙칠을 하고 말았다. 지난 13일 저녁 모 방송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방송국과 김 씨가 보여준 결론은 충격과 실망을 넘어 분노까지 치밀게 했다. 사실 모처럼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는 생각에 방송을 보면서 약간의 흥분도 일었다.
‘나는 가수다’라는 제목답게 가창력으로 승부를 겨루는 가수들의 모습은 프로의 세계를 보여주는 신선한 기획이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경합이 진행되고 무엇보다 청중들이 평가단으로 참여한다는 점은 공정사회가 화두인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그러나 결말이 제작진과 참가자들에 의해 정해진 규칙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졸속으로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지는 장면을 보면서 차라리 보지 말 걸 하는 후회를 해 봤다. 500명 평가단의 심사결과가 너무도 쉽게 무시당한 채 탈락이 결정된 김 씨가 가장 선배이고 과거 경력이 화려했다는 이유로 재도전이 결정되는 과정은 이 시대 불공정 사례의 한 표본을 보는 것 같았다.
이들을 보면서 어릴 적 읽었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떠올랐다. 그 책에서 무력과 힘으로 약자를 억압하려는 엄석대에게 굴복하는 한병태의 모습을 떠 올리면서 흡사 현 우리사회의 내 모습은 아닌가?
비록 하면 안 될 껄 알면서도 올바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권력과 현실에 굴복하는 현대인의 작은 모습에 안타까울 뿐이다.
한때 나는 우리사회에서 이런 일들은 사라져야 할 것이며 빠른 시일 내에 없었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국민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신뢰를 받은 인물조차 낮과 밤이 다른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바보였던가 하는 생각에 도착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초등학생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뒤돌아 보는 기회가 됐던 것이다. 이 책 내용과 두 사람의 망가지는 모습 어디 하나 비슷한 곳 없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영웅과 두 사람 모두 도덕성에 의해 무너진다는 사실은 거부할 수 없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개인은 물론 정부, 국회, 언론 등 공적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 회복이다. 가끔은 우리에게 애초 신뢰란 것이 있기나 했던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우리는 불신의 풍조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미친다. 정치인. 교육자, 심지어 종교지도자의 말조차 못 믿는 극도의 불신 사회를 두 사건을 통해 재확인했다. 서글프고 우울한 하루가 또 저물고 있다. 내일은 화창한 하루가 시작되길 기대해 본다.



(아주경제 양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