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대비해야
2011-03-21 09:04
국내 인플레이션 국면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지난 1월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대비 4.1%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물가당국의 가이드라인(3土1%)을 넘어섰다. 그때만 해도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계절적인 요인으로 식료품의 가격이 폭등한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날씨가 정상을 찾으면 물가불안요인은 해결될 것이고 풀린 유동성은 통화긴축으로 서서히 흡수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날씨가 풀리면서 구제역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전세난이 터졌다. 뿐만 아니다. 2월초 이집트 민주화 시위 이후 중동지역의 리스크가 크게 고조되기 시작했다. 시위의 불길이 리비아로 옮겨 붙으면서 두바이유(油)가 배럴당 1백 달러를 돌파했다. 일본의 노무라(野村)경제연구소는 국제유가가 220달러를 웃돌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원유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국제유가의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으로 민주화 시위가 확산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을 수도 있다. 이들 중동국가에 대한 원유 의존도가 82%에 달할 정도로 높은 점도 불안요소다. 지난 08년 이후 팽창한 유동성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물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유가뿐만 아니다. 철광석, 곡물 등 주요 원자재의 강세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어서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은 구조적으로 장기화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부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동안 중국은 저가상품 공급을 통해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는 역할을 했지만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다. 임금인상, 부동산 및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물가상승폭이 커져 중국도 더 이상 싼 제품을 공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수입경로를 통해 국내물가도 상승압력을 받게 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로 풀린 유동성도 글로벌 인플레 압력으로 작용, 국내 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원·달러 환율이다. 1100원대의 안정적인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어 수입물가의 급등은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제구조상 유가가 급등하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원화 가치다. 환율만 믿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정부 당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통령은 유가의 가격대별 대응책 마련을 지시했다. 원유도입처의 다변화를 추진하고, 비축유의 긴급 방출도 검토될 것으로 알려졌다.
물가가 오르면 서민이 역시 가장 힘들다. 주식시장에서 조금이나마 남은 종잣돈을 굴려보려는 개미투자자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오십보백보다.
리비아발(發) 충격파는 국내 금융시장도 강타해 '개미'들의 가슴 또한 타들어 가게 하고 있다. 한 달여 전만해도 KOSPI지수는 2120선을 넘었다. 그러나 리비아 사태가 불거지면서 불과 한 달도 안 돼 10% 가까이 지수가 폭락했다.
보통 인플레이션 기간 중에는 주식의 수익률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밑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개미투자자들이나 펀드가입자들의 마음은 바빠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슴을 졸이다 이제 겨우 수익을 내나 싶은 때 이런 악재가 또 없다.
향후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면 보수적인 투자자들은 투자비중을 줄이는 것이 당연하다. 기업의 원가부담 상승이 증시의 수익률을 낮출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상품이나 물가연동채권 등 대체상품에 대한 투자비중을 확대하는 점을 고려해 볼 필요도 있다.
다만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 줄기차게 상승하기보다는 경기상황과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상승과 하락이라는 작은 사이클'을 그리면서 추세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높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작은 사이클에 맞춰 탄력적인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정도 실력이 되는 사람은 정말 고수(高手)다. 서민수준은 아니다. 이래저래 없는 사람은 또다시 겨울을 맞고 있다.
[박용하 산은경제연구소 경제조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