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의 트렌드브리핑] 페이스북 혁명

2011-02-20 14:46

30년 독재자 무바라크를 몰아낸 이집트의 대규모 정치 시위를 촉발한 일등 공신이 페이스북이라고 한다. 페이스북은 원래 미국 대학교의 신입생 안면 익히기용 인터넷 프로그램이었다. 한 소심한 남학생이 여자 친구를 꼬시기 위해 개발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세계적인 인맥 만들기 사이트로 사업화되었다가 쌩뚱맞게도 민중봉기의 횃불이 되어 세계 정치 경제 질서를 뒤흔드는 혁명의 사령부가 되어버렸다.

‘이집트는 페이스북 이용자들에게 혁명 당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갑자기 밀어닥친 인터넷 군중의 힘에 의해 독재 정권이 붕괴됐다. 우물쭈물 관둔댔다가 아니랬다가, 부채도사 흉내를 내던 무바라크는 세기의 쪼다가 되어 재기불능의 식물 정치인이 되고 말았는데, 그의 어영부영 처신도 그 갑작스러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체 어떤 혁명이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어중이 떠중이들의 힘으로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단 말인가? 오랫동안 준비된 선전선동 전략도 없고 그 흔한 찌라시나 유인물은커녕 그것을 찍고 뿌리고 그 전에 무슨 내용을 담을까 논쟁 끝에 결단하는 조직도 없이, 어떤 혁명이 그렇게 부슬부슬 전개될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언제 진압작전을 펼칠지 모를 막강한 군대가 버티고 있는데, 더구나 용감히 목숨 걸고 나서 시위를 지휘하는 지도부도 없는데... 전략전술에 능한 군출신 무바라크는 당황했을 것이다. 자신이 잘 아는 전략전술의 문법에 가당치 않은 불길이 어디서 어떻게 지펴지고 타오르는지 몰라서 당황하다 못해 우물쭈물 했을 것이다. 호의호식 중국 진시황 못지 않은 온갖 부와 명예를 누렸으니까, 미련이 남아서라기 보다는 안버틸 이유가 없어서 버텼을 것이다.

페이스북 혁명은 그런 것이었다. 무바라크를 어어어...얼떨결에 물러나게 하는 힘. 아직도 이유를 몰라 입이 댓발이나 나와 석양 무렵 지는 해가 꼴보기 싫다며 삐쳐서 저녁밥을 굶고 있을지 모를 무바라크. 그를 세계의 조롱거리로 만든 그 우주적인 기운. 그것이 페이스북 혁명의 본질이었다.

무바라크가 이런 정도라면, 78억 불 재산, 30년 독재 조건에 미달하는 독재자들은 모두 페이스북의 위용에 바짝 업드려야만 할 거라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무바라크도 무릅꿇린 페이스북인데, 어느 안전이라고 페이스북을 무시하여 외면할 수 있다는 말인가?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다들 알겠지만 이용법은 매우 직관적이고 간단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사진, 동영상, 링크 페이지와 함께 자판으로 두들겨 올리면 끝이다. 가끔 남의 글에 ‘좋아요’ 클릭 한 번 해주고, “너 그러고 사냐? 연락한번 해라” 이런 댓글이나 한 번 달아주면 된다. 이용법 참 쉽다.

이집트 사람들은 ‘몇 날 어느 광장에 모이자” “지금 군이 발포하지 않고 있다” “경찰이 총질을 해서 어느 거리에서 누가 누가 사망했다. 다같이 항의하자” 이런 식의 댓글을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달았을 것이다. 아주 간단하고 가벼운 혁명이다. 21세기 혁명의 새로운 방식이다. 지금 이런 방식의 혁명이 독재에 신음하는 이웃나라로 전파되고 있다. 무바라크 같은 희대의 독재자도 쫒아 냈는데 그보다 취약한 어떤 독재자라면, 만만하게 무혈 또는 피를 적게 흘리고 혁명이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아련하지만 우리나라도 독재가 물러났다, 어쩔시구 좋아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인터넷이 월드와이드웹(www)도 광통신망도 없이 전화망으로 극소수에게만 공유되던 시절의 일이다. 한쪼가리 신문 기사와 소문에 의해서 와구와구 불길이 일어난 혁명이 피도 흘리고 군대도 끌려가고 감금당하고 더러 고문치사를 당하면서 죽을둥살둥 전개됐다. 만일 페이스북같은 소통의 도구가 있었다면, 판세가 쉽게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 시절 혁명은 더디고 긴 유혈의 행군이었다.

이집트에서도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총탄에 맞거나 몽둥이로 맞아 유명을 달리했다. 국제인권단체는 사망자 수가 300명이라 하고 이집트인권행동은 900여 명에 이를 것이라고도 한다. 아무리 30년 독재를 끝낸 항거라지만 한 목숨 한 목숨 절절하다. 그나마 군이 개입하지 않아 사망자가 더 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화 혁명을 먼저 경험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애간장이 끓지만, 이집트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우리나라보다 더 극단주의자들도 많고 무장력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그들의 발호를 제어하고 큰 일을 이루다니... 오늘날까지 면면이 이어지는 여러 주류 종교의 정신사와 스토리텔링의 젖줄인 이집트 문명의 포스가 새삼 위대하게 다가온다. ‘알라는 위대하다. 하나님도 위대하다. 태양신도, 불의 신도 위대하다’ 전 세계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떠들썩하게 잔치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트렌드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