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진단] "방역대책, 살처분만이 능사인가?"

2011-02-17 16:22
“예방접종·치료 위주로 나가야”vs“희생 최소화 위해 불가피”

(아주경제 이광효 기자) 지난해 11월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매몰 가축 수가 335만 마리를 넘는 등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살처분 원칙의 방역대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살처분 중심의 방역 대책은 생명존중 차원에서 옳지 못한 일일뿐 아니라 구제역을 제대로 막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환경단체 등에선 이제부터라도 예방접종과 치료위주로 구제역 방역대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구제역으로 인한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살처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특히 정운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17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환경 재앙’ 우려를 낳고 있는 구제역 침출수와 관련해 잘 활용하면 퇴비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으로 논란을 받고 있다.
 
◆ “효과 없고 피해만 키워” vs “피해 최소화 위해 불가피”
 
환경단체 등이 정부의 구제역 가축 대량 살처분 조치에 대한 반대 논거로 가장 많이 내세우는 것은 구제역을 막는 데 별다른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고 피해만 키웠다는 것이다.
 
17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구제역으로 매몰된 가축 수는 2월 17일 오전 8시 기준으로 모두 335만8445마리.
 
또한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구제역 발생 이후 이날 현재까지 살처분 보상비와 방역비용 등으로 1조2000억원 정도의 예산이 쓰였다.
 
문제는 구제역 가축 매몰에 따른 2~3차 피해까지 고려하면 살처분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커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정부 발표 자료와 외국의 연구결과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국의 구제역 가축 매몰지에서 예상되는 침출수의 양은 소에서 2400만ℓ, 돼지 3756만ℓ로 모두 6156만ℓ나 될 것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00㎖ 생수병 1억2312만개에 달하는 양이다.
 
실제 정부가 민관합동 조사단을 구성해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경북지역의 가축 매몰지 89개소를 선정해 조사한 결과 61개소에서 △사면안전성 △빗물 배제 등에서 문제점이 지적됐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4632개소에 달하는 전체 가축 매몰지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고 매몰지 주변 지하수 오염 등에 대비해 매몰지 인근에 상수도를 확충할 계획이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살처분으로 인한 매몰지역 환경오염 등 2~3차 피해까지 고려하면 그 피해액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병권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하 검역원) 수의사무관은 “지난 2000년부터 구제역으로 대규모 매몰을 해 왔지만 아직까지 크게 환경문제가 발생한 적 없다”고 말했다.

◆ “치사율 5% 미만” vs “살려 두면 계속 퍼트려”
 
구제역의 실제 치사율이 매우 낮은 것도 정부의 대량 살처분 조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어린 송아지·돼지의 구제역 치사율은 50% 정도이지만 다 자란 소나 돼지의 치사율은 5% 미만이다. 설사 구제역에 감염되더라도 많은 경우 저절로 낫는다는 것.
 
하지만 정부는 비록 치사율은 낮지만 구제역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선 살처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병권 수의사무관은 “구제역은 치료가 되면 돼지는 바이러스가 없어지지만 소는 보균자로 남는다”며 “치료한다고 계속 살려두면 계속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치료되더라도 경제성이 떨어진다. 살이 안찌고 우유 생산량도 준다”고 말했다.
 
이어 이 수의사무관은 “우리가 가축을 기르는 것도 식용을 위한 것이고 그러려면 도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구제역 감염 가축 치료는 가능한가?
 
환경단체에선 지금부터라도 살처분에서 치료와 예방으로 구제역 방역 대책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철재 정책국장은 “치료와 예방 접종 위주로 나가야 한다”며 “(구제역은)설사 걸렸다 하더라도 치사율이 5% 미만이다. 일단은 예방접종에 힘써야 하고 가능하다면 격리치료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병권 수의사무관은 “구제역은 현재 치료제가 없고 치료제 개발 연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치료하려면 대증요법(병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직접적 치료법과는 달리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치료법)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수의사무관은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동물 생명권에 대한 이야기도 일리는 있지만 가축은 식용으로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관령 목장 같은 대규모 목장은 몰라도 대부분의 목장이 좁은 공간에서 많은 가축을 밀집해 기르기 때문에 격리 치료할 여건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형 동물병원에서 격리 치료한다 하더라도 이동 중에 바이러스를 전파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에서 구제역 예방접종 확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