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제한적 낙태 허용.. 논란 일어

2011-01-15 13:29

중남미에서 가장 보수적인 국가 중 하나인 칠레에서 임신부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나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한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제한적 낙태 허용 여부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논란의 불씨를 지핀 것은 칠레 상원의원들인 독립민주당(UDI)의 에블린 마테이와 사회당(PS)의 풀비오 로시로, 두 의원은 지난달 치료적 낙태(terapeutic abortion)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함께 발의했다.

칠레에서 제한적 낙태 합법화가 추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좌파정당뿐 아니라 보수우파인 여당 UDI 소속 의원까지 발의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번 법안 발의는 의회 안팎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전에도 공개적으로 낙태 지지 입장을 펼쳐왔던 마테이 의원은 “태아가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한 경우 임신부는 임신 중단을 선택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곧이어 암환자이기도 한 임신부 클라우디아 피사로(28)가 뇌가 없어 생존이 불가능한 태아의 낙태를 허용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일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피사로는 결국 이달 초 임신기간을 다 채워 출산했고 아기는 태어난 지 1시간15분이 지나 사망했다.

논란이 일자 가톨릭 교회 인사와 보수우파 의원들은 생명 존중의 가치는 양보할 수 없는 것이며 제한적 낙태 허용은 결국 전면적 낙태 허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도 “생명, 특히 곧 태어날 생명의 가치를 항상 존중해야 한다”며 낙태 전면 금지를 고수하는 데 힘을 싣기도 했다.

칠레는 피노체트 군사 독재 시절인 1989년 이후부터 임신부의 건강이 위험하거나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인 경우를 포함해 모든 경우에 낙태가 금지돼 왔다.

2007년 기준 UN 자료에 따르면 이처럼 낙태가 전면 금지된 나라는 칠레를 비롯해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몰타, 바티칸 시국 등 5개국뿐이다.

칠레는 정.재계 주요 인사 중 가톨릭 보수 단체인 오푸스 데이 회원이 다수 포함돼 있을 정도로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하고 군사 독재의 여파가 남아있어 중남미에서 가장 보수적인 색깔을 띠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반 국민 사이에서는 종교의 영향력이 갈수록 약해지면서 엄격한 낙태금지법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칠레의 비오비오 라디오의 보도에 따르면 칠레 국민 1천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임부의 생명이 위험하거나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인 경우, 또 태아가 기형아인 경우 등에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60-70%에 이르고 있다.

산티아고 시민 루스 카세레스(여.44)는 “우파 정당의 의원까지 법안 발의에 참여한 것은 칠레가 그만큼 낙태 문제에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모체의 권리를 존중하는 여론을 반영해 법안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14일(현지시간) 신임 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되기도 한 마테이 의원은 “1년 반 안에 칠레에서 치료적 낙태가 허용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전망하기도 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