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확산일로…AI는 소강상태
2011년 새해 벽두부터 구제역이 경북 포항.영천, 강원 강릉.양구, 충남 천안, 경기 광명 등에서 잇따라 발생하면서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2일까지 접수된 구제역 의심신고 106건 가운데 74건이 구제역으로 확인되면서 이번 구제역은 발생 한 달여를 넘기면서 6개 시.도, 37개 시.군, 81곳으로 확산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구제역 발생지역을 중심으로 실시해온 예방백신 접종을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은 지역에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하지만 구제역 빈발국가인 동남아 지역을 방문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축산농민이 적지 않은데다, 구제역에 대한 이들 동남아 국가의 과학적 분석자료가 거의 없어 정부 당국이 이번 구제역의 감염.전파 경로를 규명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구제역 非발생지역도 예방접종"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2일 기자들과 만나 "지금까지는 구제역 발생지역을 중심으로 백신을 접종했으나 앞으로는 선제적, 예방적 차원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는 곳에 대해서도 백신을 접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구제역 발생지역을 중심으로 백신을 접종한 결과, 해당 지역 구제역을 진정시키는 데는 일정한 효과가 있지만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것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백신접종 방식을 사후대응에서 선제적 예방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
예를 들어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 여주와 충남 천안 사이에 놓인 경기 용인.화성 .평택 등 축산농가가 밀집한 지역을 대상으로 미리 백신을 접종함으로써 구제역 전파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특히 용인.화성.평택 등의 지역은 주변에서의 접근이 용이한 교통요지이기 때문에 미리 손을 써두는 것이 인근 지역으로의 구제역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북 안동.예천, 경기 파주 등을 대상으로 지난달 25일 시작된 예방백신 접종은 이날 충남 천안에 이르기까지 모두 19개 시.군으로 늘어났다. 접종대상도 1만9천14농가에 있는 48만3천여마리의 소로 늘었다.
이런 가운데 강원 화천군 간동면 유촌리 한우농가,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관성2리 돼지농가, 강원 원주시 소초면 평장리 돼지농가에서 각각 들어온 의심신고도 구제역으로 판정될 가능성이 높아 백신 접종 대상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구제역으로 지금까지 전국 2천564농가의 가축 66만2천647마리가 살처분.매몰됐다.
◇"산성눈.비라도 내렸으면"
정부 당국이 구제역 `차단방역'에 애를 먹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전국적으로 내린 눈이 가축전염병 확산 저지에 일정 정도 효과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유 장관은 이날 "지금까지의 분석으로는 pH 5 이하인 산성눈이나 산성비가 내리면 가축전염병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제역 바이러스를 사멸시키기 위해 방역에 사용되는 소독제가 대부분 산성인 점을 감안할 때 산성눈이나 산성비가 소독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례로 만경강, 천수만, 해남, 사천 등 전국적으로 6곳의 야생조류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검출돼 AI 바이러스가 상당수 지역의 국내 가금류 농장으로 전파됐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전북 익산에서 접수된 AI 의심신고가 `음성'으로 판정되는 등 AI가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 최근 전국적으로 내린 폭설 때문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눈이 내리면 길이 미끄러워 사람과 차량의 이동이 이전보다 줄어들게 돼 구제역은 물론 AI의 방역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감염경로 규명 난관
하지만 무엇보다 당국의 애를 태우는 것은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이번 구제역 바이러스의 감염 및 전파 경로를 지금까지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기록을 확인한 결과, 지난 2010년 5월부터 11월까지 축산농가 관계자 2만3천여명이 구제역 빈발국가인 동남아 지역을 여행하고도 무려 9천여명이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신고하지 않은 9천여명 가운데 일부를 통해 구제역 바이러스가 국내로 유입됐다면 앞으로도 구제역이 `무방비' 상태로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구제역 빈발국가들의 구제역 대응방식이 낙후된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마다 바이러스의 유사성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중국은 물론 동남아 국가들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이들 국가로부터 구제역 바이러스에 대한 어떠한 과학적인 자료도 넘겨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발생한 구제역의 바이러스가 인근 지역 어느 국가로부터 유입된 것인지 등 기초적인 분석 작업마저도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방문지를 신고조차 하지 않는 축산농가의 무책임에다 인근 국가들의 비협조까지 겹치면서 정부 당국의 방역작업도 이렇다 할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다.
다만 농식품부는 "천안과 익산의 AI 바이러스는 최근 야생상태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만경강 청둥오리, 천수만 수리부엉이, 해남 가창오리의 바이러스와 동일한 것으로, 2009년과 2010년 몽골 야생조류에서 검출된 바이러스와도 유사하다"고 밝혔다.
구제역과는 달리 AI 바이러스는 최근 몇 년 전부터 정부가 계속해온 상시예찰과 예방방역을 통해 기본적인 자료가 축적돼 있어 분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