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좋고…인심좋고 여기가 신선도"

2010-12-23 16:45
◇ 여수의 숨은 보물 금오도 ‘비렁길 트레킹’

전남 여수시 금오도 ‘비렁길’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는 미역바위 전망대다. 절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전망대에 서면 100여m 깎아지른 절벽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아래로는 큰 파도가 흰 포말로 부서지며, 마치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탈출 장면 같은 느낌이 든다.

(아주경제 윤용환 기자) 한려수도 해상국립공원에는 수많은 섬들이 그림처럼 흩어져 있다.

전남 여수시도 317개의 섬을 품에 안고 있다. 그중 하나인 금오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이 있다. 올해 처음 시작한 ‘비렁길 트레킹’이다. ‘비렁’이란 ‘벼랑’을 뜻하는 여수의 사투리다.

이 길은 이름 그대로 해안 벼랑을 따라 이어진다. 아름다운 다도해 풍경과 해넘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영화 ‘혈의 누’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촬영지이기도 하다.

트레킹코스는 함구미에서 여천까지 5km 구간의 1코스와 함구미에서 초포까지 5.5km의 2구간, 함구미에서 직포까지 8.5km의 3구간으로 나눠져 있다.

여수여객터미널에서 뱃길로 약 50분을 달리면 금오도 함구미 선착장이 나온다.

금오도는 한때 유자나무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고흥유자에 밀려 쇠락하고 말았다. 대신 암 예방과 중풍에 좋다는 방풍나물의 특산지로 유명하다. 주로 봄 새순을 채취해 나물로 무쳐먹거나, 고기쌈으로 많이 먹는단다. 모양은 땅콩과 비슷하다. 쌉싸름해 입맛을 돋우는 데는 그만이란다.

금오도 중앙에는 매봉산(주민들은 대부산으로 부른다)이 우뚝 솟아 있다. 섬 어디서나 다 볼 수 있다. 옛날에는 황금광산이 있었다 한다, 그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다.

함구미는 마을 주변에 해식애로 이뤄진 절벽이 9개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배에서 바라 본 금오도 함구미 마을의 한적한 풍경.
마을 입구를 들어서면 우선 높은 돌담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많은 지역이라 담은 높이 올린단다. 우측으로 꺾어지면 비렁길이 시작된다. 전국이 한파에 온몸을 움츠리고 있지만, 길옆으로 쑥이랑, 민들레랑 다양한 풀들이 여전히 푸른색을 띠고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상큼한 풀냄새가 올라온다. 중간 중간 유자나무가 아직도 노란 열매를 달고 있다. 일손도 부족하지만, 가격이 맞지 않아 그냥 내버려 둔단다. 비렁길은 오른쪽 정면으로 개도와 1시 방향의 향일암을 끼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개도는 물맛이 좋기로 유명해 여수 일대에서 개도 막걸리라면 최고로 알아준다.

10여분을 오르면 용두바위다. 이곳은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예전에는 10여 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노부부 한가구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 쪽으로 이어지는 50m 계단을 오르면 높은 돌담으로 가로막힌 노부부의 집이 나온다. 노부부는 옆 마을로 나들이를 갔는지 무심한 개짓는 소리가 일행을 반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본격적인 벼랑길이 이어진다. 중간 중간 억새군락을 지나면 큰 소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도장바위가 나온다.

비렁길에서는 그냥 큰 바위로 보이지만 바다에서 보면 동그란 도장처럼 생겼다고 한다. 다시 10여분을 지나면 비렁길의 하이라이트 미역바위가 나온다. 절벽 끝으로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가까이서 아래를 보니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거의 100m는 직각으로 깎여 있다. 마치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탈출 장면인 사이판의 만세 절벽을 보는 것 같다.

벼랑에서 바라 본 다도해의 절경에 가슴이 탁 트인다.

여행의 참 맛은 카메라로 다 담을 수는 없다.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 두고두고 되새기며 즐겨야 한다.

전망대에 서면 정면으로 우주센터 나로도가 나온다. 섬 우측의 흰 기둥이 우주선 발사대다.

미역바위 주변에는 갯바위 포인트가 많아 주말이면 꾼들이 지천이란다.
미역바위 전망대를 지나면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잘 다듬어진 나무 테크길이 이어진다.
10여분을 걷다보면 옛 절터가 나온다. 주민들은 송광사라 불렀다하는데 흔적만 남아있다.

잠시 대나무 사이 길을 걷다보면 바다는 잠시 물러나고 마치 산길을 걷는 듯 착각에 빠진다. 사람 키만큼이나 자란 억새들이 바람에 흰 눈을 날리 듯 춤을 춘다.

조금 더 가면 오른쪽으로 네 개의 섬이 겹쳐 나타난다. 세 개는 다른 섬 같지만 실제 같은 금오도다. 네 번째 우뚝 솟은 삼각산이 보이는 섬은 소리도의 팔봉산이란다.

이렇게 줄지어 연결된 금오열도는 여수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 왼쪽으로 송신탑이 보이면 이 여정도 아쉬운 끝이 보인다. 

하산길에 다리쉼을 위해 찾은 마을에 김장이 한창이다. 넉넉한 인심의 아주머니가 일행에게 갓 버무린 김치를 한 입 가득 건넨다.
함구미 마을이 내려다보이면 이정표가 나온다. 두포 쪽으로 가면 대부산 등반 12km코스가 이어진다. 팍팍한 다리도 쉬어갈 겸 들른 문기철(60)씨 집에서는 김장이 한창이다. 아주머니는 갓 버무린 김치를 한 입 가득 넣어준다. 넉넉한 인심은 이번 트레킹의 덤이다.

함구미 마을에는 슈퍼가 한 곳 있다. 트레킹 중간에는 식수를 마실만한 곳이 없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창길(68) 함구미 마을이장은 “금오도에서도 함구미가 가장 낙후된 곳이었다. 올해 비렁길이 열리면서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며 “물 좋고, 인심 좋고, 경치 좋고, 이만한 곳도 없다. 타지에서 많이 찾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췄다. 금오도의 먹을거리는 역시 해산물이다. 가장 번화가는 우학항이다. 식당은 주로 6000원짜리 백반이 주 메뉴다. 푸짐한 해산물과 갖가지 반찬이 한상이다.

싱싱한 자연산회도 별미다. 가격도 여수시내 횟집의 절반 가격에 양도 푸짐하다. 말만 잘하면 덤은 기본이다.

여수=글·사진 윤용환 기자happyyh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