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헌규의 중국 이야기 4-5> 녹색성장의 캐치프레이즈 ‘금산인산(金山銀山), 녹수청산’

2011-01-09 16:26
4장 철도의 나라, 궤도위에서 만난 중국

 
 늦가을 들녘의 평화로운 풍경이 차창밖에서 사라질 쯤 기차는 이빈(宜宾)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장링(長寧)현이란 곳에 들렀는데 마을 전체가 감귤밭이다. 기차가 쓰촨성 역내를 달리는 동안 야산을 뒤덮었던 선홍색 열매가 바로 이 감귤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쓰촨성은 감귤농사로도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농촌의 연간 1인당 평균 수입은 3680위안을 밑돌았다.“귤은 한근에 1.5위안(약 300원)합니다. 대나무도 재배하고 연못에 오리도 키우고 돼지도 몇마리 사육해 부대 수입을 올리지요.” 장링현의 농부는 자신의 생업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인근 방문지인 주하이전(竹海鎭)마을은 차로 반시간 지나도록 모두 대숲으로 뒤덮힌 마을이다. 대나무 산과 대나무 들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대숲의 바다에 풍덩 빠져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을 촌장은 대나무 종류는 색깔과 두께에 따라 구분되는데 이곳에만 모두 400여종의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촌장은 저장성 지안(吉安)과 장시(江西)성의 징강(井冈)산, 이빈, 이렇게 3곳을 중국의 3대 죽림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안개비가 부슬거리는 가운데 대나무산의 정상에 있는 산정 호수에 올랐다. 대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공기가 청량감을 더해줬다. 댓닢으로 지붕을 엮어 덮은 호수옆 방갈로에서 우리는 쓰촨의 매운맛, 쓰촨 방언, 쓰촨 사람들의 내성적인 성품, 쓰촨지방의 축축한 날씨에 대해 대화를 낮눴다. 이 산골마을의 쓰촨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어 ‘4(쓰)’와 ‘10(스)’의 발음을 구분하지 않았다.
 
 다음날 청두(成都)로 되돌아와 다시 난창(南昌)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역시 암표 장사에 부탁해 50위안(1만원정도)의 수고료를 주고 얻은 표였다. 중국에서는 기차표 예약 시스템이 미비해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 중국의 기차표는 승차일 7일 전부터 판매하는데 지방 출장땐 사전 표구입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자주 암표꾼에 의존하게 된다.
 
 당일 매표소에서 표를 사려면 몇시간씩 줄을 서야하거나, 아예 필요한 날짜의 표를 못구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표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중국 당국은 2010년 2월 춘제(春節 설)에 앞서 기차표 실명제를 시험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계획대로 되면 일반인들이 표를 구하기가 쉬워지겠지만 1년 정도 시험 단계에서 시행착오도 적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 염두에 둘 점은 침대칸표를 못구했어도 일단 좌석표라도 사서 승차한뒤 기차의 8~9번 차량에 있는 부퍄오(補票 표바꿈 사무실) 창구에 가서 침대칸표를 신청하면 대개의 경우 한시간 이내에 침대칸으로 옮길 수 있다.
 
 짐 정리를 마치고 기분좋게 덜컹거리는 기차의 진동을 느끼면서 잠시 차창밖의 풍경을 바라고 있는데 옆자리의 남자가 말을 걸었다.
 
 “지금 이 기차는 무당산 부근을 지나고 있어요.”
 
 그는 리런쥔(李仁軍)이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무협지에 등장하는 무당산파 있지요. 이곳 부근에 바로 그 무당산이 있어요.”
 
 기차는 난창을 향해 동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한참동안 차밭인가 싶은 나지막한 구릉이 펼쳐지더니 야채와 고구마 밭, 벼를 심은 물 논이 나타났다.
 얼핏 들판을 바라보니 들판에 세워진 대형 입간판 광고에 쓰여진 ‘금산인산(金山銀山), 녹수청산’이라는 글귀가 눈낄을 끈다.
 난창에서 외국 전자 부품 회사에 다니는 리 씨는 앞 귀절은 재물이 넘쳐난다는 뜻의 경제발전 전략이고, 녹수청산은 경제를 발전시키되 자연환경을 보전한다는 내용의 구호라고 설명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녹색성장 구호인 셈이다.
 
 “장시성은 가장 낙후한 고장 중 한곳이지요. 하지만 성 전역에 개발에 대한 열기가 점점 달아오르고 있어요. 경제성장으로 부동산가격이 치솟고 있어요. 특히 성 수도인 난창은 요즘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올랐어요. 시중심은 ㎡당 1만위안을 넘어섰지요. 제가 사는 개발구 인근의 아파트도 ㎡당 7000위안 합니다.”
 
 리씨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농촌 구석구석까지 뻗어가는 장시성 경제성장의 힘찬 고동이 느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