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해 본 보수의 지배논리 3가지
2010-11-25 13:45
앨버트 허시먼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출간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신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주류 자유시장 경제학자들보다 비주류 학자들의 조언이 더 유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주류 경제학자의 대표적 예로 앨버트 O. 허시먼을 꼽았다.
장 교수를 비롯해 이념적 성향과 관계없이 두루 인정받는 세계적 경제학자 허시먼이 1991년 발표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 출간됐다.
허시먼은 국내에선 일반인들한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정치학, 경제학, 인류학, 역사학을 넘나들며 광범위한 연구 활동을 해온 학자다.
또 비주류 경제학자이면서도 자원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는 기대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불균형 성장 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1980년대 미국에서 보수주의자와 신보수주의자들이 세력을 얻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현상을 이해하려면 보수주의자들의 담론과 주장, 수사법 같은 언어적 현상이 발휘하는 힘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에 따라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소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최근 200년 동안의 인류 역사를 되짚어 역사적 변환기마다 작동하는 '반작용 레토릭'의 근원을 연구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인권선언, 19세기 보통선거 도입, 20세기 복지국가 수립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례와 유명한 논쟁을 분석해 변화에 '반동(react)'하려는 3가지 논리를 정리했다.
역효과 명제, 무용 명제, 위험 명제가 바로 그것이다.
허시먼의 역효과 명제란 무엇을 바꾸려는 시도에, 의도하지 않은 정반대의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너희들이 무엇을 해봤자 역효과만 난다'는 것이다.
"왕권ㆍ교회ㆍ귀족과 민중의 파괴 위에 세워진 비천한 과두정치는 인간의 권리나 평등에 대한 모든 거짓된 꿈과 희망을 종식시킬 것이다. 학살, 고문, 처형! 이것이 이른바 인권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정치사상가 애드먼드 버크가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1790)에서 한 이런 추측은 신성동맹 시대 유럽의 이데올로기적 버팀목이 되는 역사법칙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역효과는 반동적 사상가들의 주장처럼 실제로 널리 존재하는 게 아니며 의도하지 않은 결과 중에서도 특별하고 극단적인 경우라고 허시먼은 말한다.
무용 명제는 '그렇게 해봐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민주주의 또한 다중에 대한 강탈일뿐이며 보통선거권이나 민주주의적 선거제 도입도 진정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가져 올 수 없다는 빌프레도 파레토의 주장이 무용 명제의 대표적 예다.
위험 명제는 개혁 자체를 반박하지는 못하지만 불행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반대한다. 이를테면 구체적 논거는 제시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라는 식이다.
허시먼은 행동의 위험보다는 행동하지 않는 것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도 과장된 수사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그는 "단순무쌍하고 독단적이며 완고한 표현은 '반동파'의 전유물이 아니며 진보주의자들 역시 똑같이 행동하는 듯하다"며 "진보 레토릭도 반동 레토릭과 마찬가지로 고도로 책략적이며 보통 인정되고 있는 것보다 대체로 더 과장을 잘하고 흐리멍덩하다"고 말한다.
웅진지식하우스. 이근영 옮김. 252쪽. 1만5천원./연합
news@aj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