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다 배꼽이 큰' 유통구조를 바꿔라
2010-10-18 18:20
농산물 고비용 해결책은?
생협·직판장 통한 직거래 시스템 활성화 필요
소비자유통센터 통해 소비자 가격 안정 도모
(아주경제 김선환ㆍ김선국 기자) 최근 배추 한 통 값이 1만5000원까지 폭등한 것은 후진적인 국내 농축수산물 유통시스템을 드러낸 단면이다. 배추 산지에서는 1000~2000원 정도에 출하되는 게 다단계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비용과 마진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것.
특히 중간도매상 몇몇이 실질적인 가격 결정권을 쥐고 소비자가격을 좌지우지해 온 불합리한 관행도 문제를 키운 배경이다.
18일 농림수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출하, 도매, 소매 등 복잡한 농수산물 유통구조는 유통비용(소비자가격에서 농가가 받는 가격을 뺀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소비자의 농산물 구입액도 2004년 52조3161억원에서 2008년 61조7414억원으로 뛰었다.
반면 산지 농민의 수익 비율은 2004년 59.2%에서 2008년 55.5%로 오히려 줄었다.
농수산물유통공사(aT)의 '농산물 유통실태 조사(2008년)'에 따르면 국내 농산물의 유통비용은 소비자 지급액의 44.5%로 추정된다. 100원 중 45원이 유통과정에서 고스란히 사라지는 셈이다. 유통구조의 고비용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배보다 배꼽이 큰' 이같은 가격구조는 상식을 초월한다. 특히 파와 감귤, 당근, 양파, 무 등의 유통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당근의 유통비용은 75%, 양파 71.5%, 무 70.9%, 파는 무려 81.5%에 달한다.
농산물의 평균 유통비용을 단계별로 보면 출하단계 11.8%, 도매단계 10.6%, 소매단계 22%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경북 영주 사과가 서울 가락동시장을 거쳐 소매상에게 건너갈 때 농가는 ㎏당 1900원을 받고, 소비자는 4200원에 산다. 이때 유통비용률은 54.8%에 이른다.
그러나 가락동시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소매상에게 갔을 때 농가는 2160원을 받고, 소비자는 4100원에 살 수 있다. 유통구조에서 한두 단계만 빠지면 농가나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농산물 유통단계를 하나라도 줄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몇몇 중간도매상이 가격 결정권을 가진 것도 문제다. 국내 유통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매상이 직접 경매에 참여하지 못하게 돼 있다. 이는 중간도매상 몇 명이 얼마든지 가격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구조다.
시장전문가들은 "중간도매상 30여명이 전국 배추 가격을 쥐락펴락하고, 심지어 미나리는 2∼3명이 실질적인 가격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나라는 농가가 영세하고 조직화ㆍ집단화가 잘 돼 있지 않아 도매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복잡한 유통단계를 거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규모화ㆍ전문화된 농수산물 판매 전문 유통회사는 전국적으로 지난해 6개, 올해 4개 등 총 10개가 설립됐을 뿐이다.
미국이나 네덜란드, 일본 등은 이와 유사한 기능의 유통회사들을 시ㆍ군 단위마다 설립해 수집단계를 축소하고 직거래장터 등도 곳곳에 설치해 유통과정을 2∼3단계로 단축했다. 이와 함께 관행적으로 지속되는 실물거래도 유통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몇몇 농산물은 산지에서 서울 등 대도시 대형 도매업체의 경매를 거쳐 산지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 도매시장 현대화, 전자상거래 활성화 계획
올해 정부는 서울 송파구 가락동을 비롯해 광주 각화 등의 도매시장 시설을 현대화하는 등 2015년까지 11개 시설을 개선하고, 도매시장 반입비용 절감을 위한 전자거래 및 견본거래 산지 직배송 시범사업도 펼칠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와 농협, 지자체가 농산물 유통 개선사업에 해마다 수조원씩을 쏟아붓고 있지만 대부분이 풍작이면 갈아엎어 보상하고, 흉작이면 곧장 수입하는 땜질식 처방인 탓에 유통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뒷북을 치거나 억지로 때려잡는 방식으로는 단기적인 효과밖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대근 우석대 교수는 "산지 수집상이나 중간도매상의 가격 담합도 문제지만 복잡한 유통시스템이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며 "소규모의 농가를 조직화하고 규모화된 농산물 전문 유통회사를 대폭 확충하면 유통비용이 절감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유 교수는 "정부는 생협이나 직판장을 통한 직거래 시스템과 농민의 사이버거래 등이 활성화하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농민들도 트위터나 인터넷 쇼핑몰 등 변화한 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급격한 농산물 가격변동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부에서는 농산물 가격 상승이 주도하는 '애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채소와 곡물류 등 농산물은 서민생활의 안정과 직결되는 만큼 정부와 농협, 지자체, 농민이 머리를 맞대고 혁신적인 유통구조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제50차 라디오ㆍ인터넷 연설에서 "일부 중간상인들의 독과점이나 담합으로 인해 산지 농민은 고생해서 싼 값에 팔고 소비자들은 비싼 값에 사먹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며 "앞으로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이러한 불공정한 사례가 없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채소 유통과정에서 일부 중간상인들이 불공정한 방법으로 폭리를 취한다는 세간의 인식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앞으로는 이같은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농협, 소비지유통센터 대안 떠올라
이같은 시점에서 농협중앙회가 올해 말부터 착공하려던 안성 '농산물 소비지 유통센터'가 다단계 농축산물 유통구조를 줄여 소비자가격을 안정시키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발표가 지연되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되지 못해 올해 정기국회에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도 안성 소비지 가공센터 건립사업은 지난 3월 '국고보조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사업'에 선정돼 지난 4월 21일부터 8월 20일까지 4개월 동안 한국개발연구원(KDI) 본 심사, 6월 부지 조성공사 및 실시설계, 오는 12월 공사 착공, 2012년 12월 준공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당초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하려면 국고 보조 여부를 결정하는 예타 조사 결과가 정부의 예산 편성 전에 마무리됐어야 했다.
sh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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