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여전히 ‘사람’은 건설업의 재산인가?

2010-10-15 13:49

   
 
 
 [심규범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박사] 건설업계에 전가의 보도처럼 전해왔던 ‘건설업은 사람이 재산’이라는 금언이 있다. 다양한 의미가 있겠지만 건설현장의 경험을 중시한 표현이라는 해석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생산물의 성격상 표준화가 어렵고 옥외에서 작업이 수행되기 때문에 유사한 생산물이라도 기후와 토질 등 여건에 따라 매번 최적의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방대한 내용을 학교 수업에서 교과서를 통해 배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실전에 활용할 수 있는 갖가지 노하우는 장시간에 걸쳐 다양한 건설현장에서 기후 조건에 따른 경험을 축적하면서 비로소 몸에 체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풍부한 노하우를 몸에 지닌 사람이 재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들어서는 '립서비스'로도 듣기 어려운 말이 되고 있다.

 건설업계는 여전히 사람이 부족하다. 최근 국내외에서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원전 현장과 수주액이 40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는 해외건설 분야에서도 전문인력이 부족하다. 국내 일반 건설현장 역시 숙련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전체 취업자의 40대 이상 구성비가 58%인데 비해 건설기능인력의 경우 74%나 된다. 이대로라면 숙련의 대(代)가 끊길 지경이다. 저임금을 무기로 외국인력이 내국인력을 대체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장에서는 숙련도 수준의 저하로 품질 저하·재시공 증가·하자 증가 등의 폐해가 야기된다. 새 아파트에서 물이 새는 기가 막히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건설업의 재산인 사람이 부실해지면서 국민의 재산에 손실을 주고 있는 셈이다.

 건설업의 재산인 사람이 부실해진 데에는 재산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데에 그 원인이 있다. 최근 친서민·상생·일자리·공정 등이 화두로 부각되는 가운데 국감이나 정부 대책에서도 건설근로자의 실태가 자주 등장한다. 일을 한 후 못 받은 임금을 받으러 갔다가 구타로 사망한 근로자, 일을 한 시점에서 2~3개월이 지나서야 지불되는 유보임금, 하루 약 10시간의 장시간 근로, 하루 두 명 꼴의 사망자, 30년간 한 우물을 파도 여전히 나아진 것 없는 ‘노가다’, 30년 근속자의 평균 연간 소득이 1800만원, 국민연금 적용율 28% 등. 이것이 건설업의 재산인 기능인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접이다. 우리의 자식을 건설현장에 보낼 수 있을까. 청년층의 지속된 진입 기피와 고령화는 우리 사회의 업보다.

 우리는 지금 건설업을 살리고 국가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숙련인력의 육성이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 하지만 제대로 키워야 한다. 숙련인력을 육성하는 데 평균 5년이 소요되므로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건설현장의 공법 변화와 세부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수요자인 건설산업 차원에서 체계적인 훈련계획을 수립해 스스로 주도하도록 하되 고용보험에서 이를 지원해야 한다.

 숙련이라는 생산 요소의 특징은 사람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숙련인력을 확보하려면 먼저 명확한 직업전망을 보여 주어 훈련에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건설근로자의 실태 개선도 필요하다. 건설현장의 사업주 역시 그러한 실태의 개선을 원한다. 이들은 품질과 경쟁력이 숙련인력의 손끝과 사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선을 가로막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공사비의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최저가낙찰제 공사의 경우 원수급자의 낙찰률이 통상 60%대이고 하수급자의 낙찰률은 더욱 낮아진다. 수주를 위해 손쉽게 낮출 수 있는 것이 노무비이고 사업주의 지불능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근로조건의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공공공사의 과도한 예산 절감은 향후 국민의 유지관리비 증가와 숙련기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올해 들어 건설관련 공고생들 중 취업에 관심을 갖는 학생이 늘었다고 한다. 진학을 해도 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건설업의 재산인 사람이 소중히 대접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 한다면 청년실업과 고령화를 동시에 풀 수 있는 근본적 해법이 도출될 수 있다. 여기에 근로자와 사업주 그리고 건설업과 국민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제대로 대접하고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값 받아 제값 주기’라는 상식이 구현돼야 한다. 코앞의 10% 예산 절감이 아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준비하는 혜안과 실천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은 건설업의 소중한 재산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