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브리핑]인사 청문회의 기준

2010-09-19 23:36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시대는 어느 결에 지났다. 과정이 하도 험난해서 필설로 형용할 수 없지만, 아무튼 지나갔다.

과거 민주주의를 유린했던 권력은 이제 대중에게 아부하고 애교 부리고 굽신 거려야 차지하거나 행사할 수 있는, 싸구려 골동품처럼 가치가 낮아졌다.

'2인자'나 '3인자', '실세' 소리를 듣는 거물 정치인도 유권자에겐 큰 절을 하고 반대파에겐 90도 각도로 인사를 해야 겨우 삿대질을 피할 수 있는 형편이다. 청문회가 대통령의 인사권마저 좌지우지하게 된 시대의 권력은 측은하고 가소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권력이 날개 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감상하다가 불쑥, 과연 저렇게까지 비루하게 비춰져서야 고위직들이 도매금으로 하룻강아지 취급을 받게 되는 거 아닐까 염려도 생긴다.

권력은 무질서의 견제수단이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예방하는 훌륭한 발명품인 데, 발명의 취지가 무색하게 가치가 추라한다면 그 부작용이 어디까지 미칠까 걱정되는 것이다.

부패인사를 솎아 내고 실력을 사전 검증한다는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무대가 되고 말았다. 청문회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앞 다퉈 희생물들을 '스핑크스의 침대' 위에 눞혀놓고 권력을 비웃고 조롱하며 발가벗겼다.

요즘 검사들도 하지 않는다는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세요'하며 윽박지르는 여성 국회의원의 굳은 표정이 관중들의 카타르시스를 쥐어짜는가 하면 '기억이 잘 안 나서…' 하며 맹하게 구는 젊은 총리후보자의 표정은 관중들의 한숨을 짓게 만들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니, 그까짓 자리 안 가면 그만이지 사람을 바보 천치로 만들 건 뭐요?' 소리치며 신발짝을 벗어 던지고 나왔을 법한 장면도 있었다. '당신이 내 자리에 선다면 그보다 더한 의혹의 덩어리가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며 발끈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후보자들의 표정도 읽혔다.

득의만면 '자, 이만하면 당신 뒷조사를 단단히 했다고 칭찬 좀 해주지 않을래?' 하는 표정으로 후보자를 깔보는 의원들의 우쭐거리는 태도도 확연했고, 미묘한 말꼬투리를 잡아채서 꼬리가 몸통을 흔들도록 집요하게 난타전을 펼치는 지도부의 잔꾀도 눈에 띄었다.

그동안 털어도 안 나오던 먼지가 풀풀 날렸고, 먼지의 성분을 둘러싼 궤변은 공격하는 자나 당하는 자나 모두 도를 넘었다.

시중의 술꾼들은 '저런, 저런…쯧쯧…' 혀를 차며 청문회 장면을 안주거리 삼아 코가 삐뚤어졌다.

이런 청문회를 감상하노라니까 권력이 날개 없이 추락하여 시장 바닥에 쓸려 다니는 시래기처럼 하찮게 여겨질 정도다.

권력을 무참한 이미지로 먹칠해버린 듯한 이번 청문회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중요한 이슈가 있다. 다름 아닌 청문의 기준이다.

청와대는 '일 할 사람, 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함께 공유할 사람 위주로 선발했다' 하고 국회의원들은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사람, 구설에 휘말릴만한 약점이 없는 사람을 가려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두 가지 중 어떤 기준이 중요하냐 하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른 의견도 있겠지만 이런 의견이 있음도 무시하지 말았으면 한다.

'요즘 인사 트렌드는 도덕적 흠결 없는 무행동의 맹추보다 일을 힘차게 치고 나가 서푼어치 먼지를 묻혀도 담담한, 실천력 있는 사람이다. 공직자는 유학자나 도학자가 아니다. 심부름꾼이다. 잘못하거나 명을 거스르면 법과 규범으로 처벌하면 그만이다. 인사청문회가 인사법정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트렌드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