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소송관련 대손충당금 적립 "내 마음대로"

2010-09-02 17:16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금융감독당국이 은행권 우발채무 소송에 대한 대손 충당금 적립 규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은행들이 사실상 관련 충당금을 자의적으로 쌓고 있다.

은행들은 제각각의 규정을 근거로 소송가액의 최대 2600분의 1에 불과한 충당금을 쌓는 등 당기순이익이 부풀려지는 등의 회계 왜곡 우려도 커지고 있다.

2일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우리·신한·하나·외환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우발채무 관련 소송건수는 지난 6월 말 기준 총 2295건(제소, 피소), 소송가액은 3조673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들 은행의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 2조6113억원보다 40.67%나 많은 규모다.


하지만 이들 은행이 소송에서 지거나 관련 채무를 떼일 것을 우려해 쌓은 대손충당금은 총 2172억원으로 전체 소송가액의 6.13%에 불과하다.

소송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충당금을 많이 쌓을 경우 당기순이익이 줄어들 수 있어 관련 충당금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충당금을 많이 쌓으면 (당기순이익이 줄어드는 등의) 회계 왜곡이 있을 수 있어 추정할 수 있는 만큼만 충당금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은행들이 당기순이익을 올리기 위해 충당금을 적게 책정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소송 관련 충당금 적립 문제에 대해 아무런 규정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은행들은 자체 내규에 따라 대손 규모를 결정하고 있다. 결국 대손충당금 결정이 자의적이라는 얘기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특별히 소송 관련 충당금 규정 및 규제가 없어 은행마다 내부 규정에 따라 대손금을 측정하고 있다"며 "소송 내용 및 소송가액, 과거 사례, 1심 결과 등을 토대로 충당금을 쌓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 같자 은행마다 충당금 적립 규모도 제각각이다.

총 소송가액이 1조9554억원인 국민은행의 경우 이에 대비한 충당금을 20분의 1 수준인 968억원만 쌓고 있다.

우리은행은 소송가액(9163억원)의 3% 수준인 31억원을 충당금으로 쌓았고, 하나은행은 소송가액(2441억원)의 5분의 1 수준인 440억원의 충당금을 적립했다.

특히 외환은행의 경우 소송가액은 총 7123억원에 달하지만 관련 충당금은 2억7500만원으로 26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송의 경우 사례가 다양하고 결과 예측이 어려워 관련 충당금 적립 규정을 만들기 어렵다"면서도 "은행들이 자의적으로 관련 충당금을 적립하기 때문에 신뢰 문제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은행들은 부동산 침체 장기화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대출에 대한 추가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충당금 적립을 강화하고, 신규 PF대출은 사실상 중단하는 등 문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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