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아틀리에] ③ 서양화가 황주리 "칼라 작품이 '소통'에 주목했다면 흑백 작품은 나를 위한 일기"
꽃 그림으로 유명한 서양화가 황주리가 자신의 작품 '식물학'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서울시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자리한 황주리 작가의 집을 찾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벽 한 쪽을 차지하는 흑백 대형 그림이었다. 작품의 제목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작가가 가장 좋아한다는 이 작품 속에는 저마다 다른 인간 군상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 달리기에서 1등으로 들어오는 사람, 장미꽃을 들고 있는 사람,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시계를 보는 사람,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키스하는 남녀 등등.
"칼라 그림이 관람객과의 대화를 뜻한다면 흑백은 자신만의 일기라고 할 수 있죠. 식물학 시리즈 처럼 화려하고 밝은 색의 그림들이 인기가 더 높지만 저는 오히려 흑백작품을 더 좋아해요. 흑백작품이 인간 군상의 모습을 더욱 솔직하게 표현했기 때문이죠."
강렬한 색채와 상상력으로 주목받는 서양화가 황주리 씨는 생각보다 훨씬 앳된 모습이었다. 노란 바탕의 '식물학' 앞에 앉은 그가 활짝 웃자 그가 꽃인지 작품 속 꽃이 사람인지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지난 7월 11일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꽃보다 사람'을 마친 작가는 최근 작업실 리모델링을 마쳤다. 하얀 바탕의 벽면에 작가의 작품들이 정갈하게 걸려있고, 한 쪽 벽면은 통유리로 돼 있어 마치 갤러리 같았다.
작품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황 작가. |
"그림 안에 이야기가 있는 거죠. 어떤 예술이든 바탕에 있는 정서는 바로 문학적 정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관람객들에게 내레이션,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틈만 나면 여행을 하는 걸로 유명한 작가는 아니나다를까, 최근 그리스와 터기에 다녀왔다고 전했다.
"옛날 맛이 안나요. 그리스와 터키는 두번째 가는 건데 그리스 산토리니만 해도 너무 상업화가 돼서 실망했죠. 어딜 가든 온 세상이 다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징이 없어지는 거죠. 하지만 그래도 여행은 여전히 매력적인 대상입니다. 살아있다는 기분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죠. 여행을 하면서 인간의 흔적이 닿은 곳들을 찾아 사진을 찍고 그 사진들은 작품의 소재가 됩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넣는 작품들을 새롭게 선보였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볼 수 있는 수도꼭지, 눈에 익숙한 좁은 골목 등 인간의 흔적이 닿은 장소를 배경으로 했다. 또 최근에는 안경알과 돌 등 기존 소재들 외에도 초등학교 의자 등을 사용해 주목받았다.
"돌이나 안경 보다 사진은 훨씬 더 수집하는데 자유롭죠. 또 다른 소재들은 물질감이 있는데 반해 사진은 질량이 없는 이미지니까 훨씬 더 편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한편 현재 '나비'라는 웹진에 글을 연재하고 있는 그는 오는 10월 소설책을 출간한다.
"그림이 본업이라면 소설은 '일상탈출'인 셈이죠. 에세이를 쓴 적은 있지만 소설은 이번이 첨이라 많이 긴장도 되고 반면 기대도 커요. 9월 1일엔 소설가 이상을 기리는 '문학 그림전'에도 갑니다. 우리네 삶을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그림과 소설은 한 맥락이라고 봐도 되겠죠?(웃음)"
mihole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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